몇 해 전, 방송인 노홍철이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대장항문질환 사실을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충을 희극으로 승화해 안방극장에 큰 웃음을 안겼는데요. 과연 노홍철처럼 자신의 대장항문질환을 떳떳하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오늘 강북삼성병원 블로그에서는 현대인의 말할 수 없는 비밀 ‘대장항문질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하는데요. 강북삼성병원 외과 정경욱 교수와 함께 대장항문질환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질병을 개선하기 위한 올바른 생활습관을 알아봅니다.
숨기고 싶은 대장항문질환
대장항문질환 환자들은 큰 고통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부끄럽다는 이유로 치료는 커녕 혼자서 끙끙 앓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더럽고 수치스러운 질병이라는 편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데 나 혼자만 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소외감 등으로 치료를 꺼리는데요. 정경욱 교수는 “대장항문질환은 많은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아주 흔한 질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발표된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치핵으로 대장항문질환 치료를 받은 환자가 61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치핵 외 다른 대장항문질환 환자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나죠.
정경욱 교수는 “대장항문질환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지 않는 건 질병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회적 인식 탓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질병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환자들이 자신의 항문질환 종류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우리가 치질이라고 부르는 질병은 사실 치핵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으며 치질은 모든 항문질환을 아우르는 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대표적인 대장항문질환은 크게 8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치핵, 치루, 치열,직장류, 직장탈 등의 항문질환과 대장암, 대장용종, 과민성대장증후군 등의 대장질환이 바로 그것인데요.
여기서 ‘치핵’이란 항문 주변의 혈관과 결합 조직이 덩어리를 이루어 돌출되거나 출혈이 되는 현상을 말하고 ‘치루’는 항문선의 안쪽과 항문 바깥쪽 피부 사이에 터널이 생겨 구멍으로 분비물이 나오는 현상을 말합니다. ‘치열’은 항문관 부위가 찢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직장류’와 ‘직장탈’은 남성보다는 출산을 경험한 여성들에게서 잘 발견되는데, 직장류는 직장과 질 사이의 벽이 얇아져서 주머니 모양으로 늘어나 배변 장애와 변비를 일으키는 질환을, 직장탈은 직장이 항문 밖으로 나온 상태를 말합니다.
현대인들의 생활습관이 변화하면서 항문질환뿐만 아니라, 대장질환도 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대장질환 중 하나인 ‘대장암’은 폐암, 간암과 함께 3대 암으로 꼽히기도 하는데요.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99년 10만 명당 27명이었던 대장암 환자는 2014년 53.1명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고 합니다.
정경욱 교수는 “대장암과 대장용종은 같은 스펙트럼에 있는 질병”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대장암과 대장용종 외에도 현대인들에게서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쉽게 발견된다고 하는데요.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별다른 이상이 없는데도 배가 아프고 변비나 설사 등을 반복하는 질환으로, 스트레스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 약하거나, 대장근육의 수축 반응이 과도한 사람들은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생길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합니다.
30년을 속으로 끙끙…
50대 항문질환 여성의 이야기
질병에 대한 수치심, 부끄러움은 때로는 오랜 고통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정경욱 교수는 대장항문질환을 치료받는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져서 혹은 대장항문질환은 치료할 수 없다는 생각에 오랜 시간 진료를 미뤄왔던 한 여성 환자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는데요.
여성 환자 A씨는 출산 이후, 직장의 앞쪽 벽이 내려앉는 직장류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배변 활동을 할 때마다 말 못 할 고통을 느꼈지만, 남에게 알리기 부끄러워 고통을 참아온 지 30년이 되어서야 병원을 찾았습니다. A씨가 정 교수를 찾아왔을 때는 이미 질병을 앓은 지 오래된 상태였죠. 정교수는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지 묻는 A씨를 보며, 오랜 시간 남몰래 참아왔을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그때의 감회를 밝혔는데요.
다행히 A씨는 수술을 통해 직장류를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만, 조금 더 일찍 병원을 찾았다면 고통에서 더 빨리 해방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문제는 A씨와 같은 여성 환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여성의 30%가 항문질환을 겪고 있는데요. 대장항문질환은 빨리 치료할수록 고통이 줄어들기 때문에 치료를 주저하지 말고, 가능한 빨리 의료진을 찾아야 합니다.
특히 여성 환자는 성별이 다른 의료진에게 진료를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대장항문질환은 반드시 항문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의료진의 성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 텐데요.
정경욱 교수는 “심지어 여성 환자들이 여의사인 내게 진료를 받을 때도 부끄럽고 미안해하기도 한다”며 환자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느낀 바가 크다”며 “용기 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 나의 고통에 공감하고, 이해해준다면 환자들도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마음을 알기에 정경욱 교수와 강북삼성병원 의료진들은 더 세심하게 환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고 하네요.
대장항문질환 치료,
꾸준한 관리가 필요해!
정경욱 교수는 ‘대장항문질환은 평생을 함께하는 친구’라고 말합니다. 다른 질병과 달리, 한 번 발병하면 완치가 어렵고 늘 관리를 해줘야 하고, 환자가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면 언제든 심화, 재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 교수는 “대장항문질환이 심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생활 속에서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대장항문질환 환자들은 식사할 때 물과 채소를 많이 먹고, 균형 잡힌 식생활과 함께 적당한 운동, 금연과 금주 등을 실천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한편, 정 교수는 “대장암이나 대장용종 환자들은 수술 후 육류 섭취를 끊는 경우가 있다”며 “이럴 경우, 오히려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는데요.
고기를 먹을 때에는 살코기 위주로 섭취하고 구워 먹기보다는 삶아 먹을 것을 권장했습니다. 또 그는 장시간 앉아있는 직장인에게 한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스트레칭을 할 것을 추천했는데요. 스트레칭하는 것만으로도 대장항문질환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정경욱 강북삼성병원 외과 교수와 함께 현대인의 말할 수 없는 비밀, 대장항문질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그동안 남몰래 대장항문질환을 앓고 계셨던 분이 있다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장항문질환을 겪고 있으며 결코 부끄러운 질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