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9세인 경숙씨는 요즘 몸 컨디션이 말이 아닙니다. 어려운 경쟁을 뚫고 남들이 선망하는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학교와 직장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적응 기간이 끝나자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업무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1년, 2년 시간이 흐르면서 입사 초기 서로 친하게만 느껴졌던 동기들간에도 묘한 경쟁의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경숙씨가 몸의 이상징후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부터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소화가 잘 안되기 시작했습니다. 늘 속이 더부룩하고 음식이 위장에 있는 것이 거북하게 느껴졌으며 트림이 자주 나왔습니다. 특히 상사들에게 보고를 하거나 발표를 해야 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속이 나빠졌고 두근거림과 식은 땀이 나는 것도 점차 심해졌습니다.

직장에서 늘 긴장한 채 지내다 보니 집에 오면 피곤하기는 한데 이상하게도 잠이 잘 오지 않아 제대로 못 자는 날이 많았습니다. 늘 피곤하고 지친 상태이다 보니 엄마에게는 짜증을 내기가 일쑤였고 그리고 나선 자기 자신에게 속상하고 엄마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혼자 눈물을 흘리는 날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우 병원을 찾아 혈액검사나 내시경 등을 해보아도 이상소견이 발견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개 검사상 이상이 없으면 의사는 “신경성이니 마음을 편히 가지고 푹 쉬라”는 류의 조언을 해주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검사결과와 의사의 조언으로 인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오히려 계속 악화되어 가는 경우입니다. 경숙씨가 바로 그러한 사례였습니다. 차라리 검사결과에 이상이 발견되어 병원에서 원인을 해결하고 아프기 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하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의사의 설명은 그에게 좌절감을 안겨줄 뿐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경우 의심해보아야 할 질병이 신체형장애입니다. 신체형장애는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이 원활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소화불량, 두통, 흉통, 복통, 근 골격계 통증 등이 주된 증상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0~2014) 기록을 볼 때 여성이 남성에 비해 두 배 가량 진료인원이 많았으며 40대 이상이 전체 진료인원 중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월별로 살펴보면 특히 3월에 진료인원이 많은데, 3월은 설 명절, 입학, 졸업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인원들이 진료를 많이 받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플 때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오랫동안 받아 마음의 상태(보다 정확히는 뇌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몸이 영향 받을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마음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는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체형장애는 때때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가볍지만 가장 흔한 모습은 명절을 앞두고 며느리들이 미리 몸이 아파지는 ‘명절증후군’의 형태입니다.
이 경우 명절이라는 스트레스 요인이 점차 다가옴에 따라 아직 오지는 않았지만 단지 예상되는 것만으로 신체가 다양한 이상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경숙씨의 경우 지속적인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신체증상을 만들었고 이러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서 가벼운 우울증상도 동반된 상황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체형장애는 어떻게 해결할까요?
신체형장애는 보통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 다양한 정신 질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치료방법으로 상담 등을 통한 심리치료를 실시하게 되며 우울이나 불안 증세가 동반된다면 약물치료(항우울제, 항불안제)를 병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자신의 증상과 문제의 주된 원인이 정신적 스트레스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충분한 검사를 했고 그 결과 별다른 이상이 없다면 또 다른 병원에서 검사를 반복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또 치료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환자들, 특히 저학력의 노인환자들일 수록 신체증상의 원인으로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작용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검사를 반복하거나 고가의 보약 등 검증되지 않은 치료를 시도하면서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흔히 진료실에서 보게 됩니다.
정신적 갈등 시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질환인 만큼 스스로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위 사례의 경우 다행히 경숙씨는 정신과를 찾았고 상담과 약간의 약물치료의 병행을 통해 몸도 마음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픕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파 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인정해줄 때 신체형장애는 점차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