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경을 비롯한 여러 검사에서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위장관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를 기능성 위장장애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소화불량을 포함한 상복부 증상을 나타내는 것을 기능성 소화불량, 변비나 설사를 포함한 하복부 증상을 나타내는 것을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이는 현대인에서 가장 흔한 질환의 하나로서 눈에 보이는 병변을 가진 위십이지장 궤양이나 장염 보다도 흔히 환자가 병원을 찾는 이유가 됩니다.
지금까지 기능성 위장장애의 원인을 찾기 위한 수많은 연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주된 기전으로 정신-신경학적 이상, 위장관 운동기능의 이상, 위장관 감각기능의 이상이 거론됩니다. 시기적으로 살펴보면 과거에는 그 원인을 주로 신경성이라고하여 환자에게 정신, 심리적으로 이상이 있는 것으로 주장되었으나 여러 연구 결과 그런 경우는 극히 일부로 밝혀졌습니다. 그 후에는 위장관 기능의 이상이 보고되어 위, 장의 경련, 마비 등 운동기능의 이상이 그 원인으로 추정되었으나 이 또한 원인의 전부를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기능성 위장장애 환자의 상당수가 정신 신경학적 이상이 없고 위장 기능 검사에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그리하여 최근에 대두되는 원인은 내장의 과민성, 즉 내장의 감각이 예민해졌다는 이론입니다.
이는 일반인이 통증이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 사소한 장내 자극이 어떤 이유에서든 내장이 예민해진 이들 환자에게서는 불쾌감, 나아가서는 통증을 유발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추정은 발목 뼈가 부러졌다가 다 붙은 뒤에도 한동안 계속 발목이 시큰거린다든지, 분만 시의 고통으로 인해 출산 후에도 상당 기간 온몸이 쑤시는 현상 등으로 이미 그 가능성이 인정되었습니다.
실제로 기능성 소화불량 환자에게 물어보면 환자의 일부는 증상이 나타나기 수일 내지 수십 일 전 특정 음식을 잘못 먹고 심한 고생을 한 뒤 증상이 지속된다고 한다든지, 과민성 대장 증후군 환자의 경우 전에 심한 설사병을 앓고난 뒤 아랫배가 계속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쥐의 장에 세균을 주입하여 장염을 유발시킨 후 장염이 다 회복된 한참 뒤에 쥐의 장을 자극했을 때에 쥐가 여전히 심하고 지속적인 통증 반응을 나타내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실험적으로도 입증이 되었습니다. 갓 태어난 쥐의 장에 염증을 유발시키면 그 쥐가 성숙한 어른 쥐가 된 뒤에도 그 장은 통증에 민감해져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러한 이론적 개념을 바탕으로 내장 과민성에 대한 동물 실험, 임상 실험이 최근에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추정되고 있는 내장 과민의 기전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장내 말초신경 자체가 예민해진다는 이론은 가장 중요한 기전의 하나입니다. 이는 내장 점막에 분포하고있는 말초신경의 반응 시점이 비정상적으로 낮아져서 정상인에게서는 불쾌감이나 통증을 유발하지 않는 약한 장내 자극, 즉 음식물의 위장 내 유입이나 장내 가스의 이동, 대변의 움직임 등에 대해서도 불쾌감 내지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내장 감각이 중추신경에 전달될 때 중간에 척수에서 과장되게 증폭된다는 이론도 중요한 기전입니다. 즉 말초에서 올라온 미약한 신호가 척수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신경전달물질의 과다분비, 평소에 작동을 안하던 신경의 활성화 등으로 증폭되어 통증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기타 내장에서 올라온 감각을 대뇌에서 인지하는 것이 잘못되어 통증으로 착각하는 것, 대뇌에서 척수로 통증을 감소시키는 신호를 보내는 경로에 이상이 생긴 것 등이 추가로 거론되는 기전들입니다.
최근에는 통증의 경로에 관여하는 신경의 특성, 신경을 전달하는 물질 등에 대해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통증과 관련이 있는 분야, 즉 신경생리학, 마취학, 약리학, 소화기내과학 등에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서로 간의 협력을 통한 공동 연구도 많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각각의 기전을 토대로한 치료약의 개발에 몰두하고 있으며, 이미 과거부터 쓰여지고 있는 약과 더불어 일부 새로 개발된 약은 실제 환자에게 쓰여질 날이 임박하고 있습니다.
강북삼성병원 소화기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