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환자의 자기주도적 관리를 돕는 친절하고 노련한 코치,
환자와 함께 당뇨병 마라톤을 완주하다
내분비내과 박철영 교수
당뇨병 환자 10명 중 3명은 본인에게 당뇨병이 있는 줄 모른다. 몸이 당장 괴롭거나 표가 잘 나지 않는 질환인 탓이다. 그래서 만성 합병증이 더 무섭다. 증상이 없거나 경미하다고 허술하게 관리하거나 제대로 치료하지 않는다면 실명, 혈액투석, 뇌졸중, 심근경색, 다리 절단 등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반면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생활습관을 바꾼다면 질환인 듯 아닌 듯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내분비내과 박철영 교수는 친절하고 노련하게 당뇨병 환자 옆에서 마라톤을 이어나가고 있다.
당뇨병은 생활습관의 문제로 생긴 병
잘못된 습관으로 인한 비만이 주요 원인
당뇨병은 제1형과 제2형으로 구분된다.
“제1형 당뇨병은 자가면역기전 때문에 인슐린을 분비하는 저장고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겁니다. 소아 당뇨병이라고 하니까 다 유전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유전적 영향과 가족력은 제2형 당뇨병이 더 많습니다. 제2형 당뇨병은 생활습관병이라고 하는데 비만이 문제이죠. 비만에 이르는 여러 요인들 즉 잘못된 불균형 식사, 운동 부족, 많은 스트레스, 음주, 잦은 간식 등이 당뇨병의 주된 원인입니다.” 우리나라 환자는 거의 대부분 제2형 당뇨병이며, 최근에는 젊은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당뇨병 치료의 기본은 혈당치 조절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 중 혈당 조절 목표(당화혈색소 6.5% 미만)에 도달한 비율은 30%가 채 되지 않는다. 혈당 조절을 하려면 약물요법도 필요하지만 고혈당과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하는 생활습관 개선이 일차적이다. 자가 혈당 측정·관리와 더불어 체중 감량, 식이요법, 운동요법 등이 필수적이다.
“당뇨병은 궁극적으로 생활습관의 문제로 생기는 질병입니다. 그렇다면 생활습관을 교정하려는 노력이 치료의 첫걸음이겠죠. 하지만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엄청난 의지와 결단력이 필요하죠.”
당뇨병은 완치 불가한 만성질환
합병증 예방하거나 최대한 늦추는 것이 최선
박철영 교수는 생활습관을 바꾸려는 환자의 노력이 부족한 점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환자 탓만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환자로서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노력하든 말든 할 거 아니에요. 병원에서 환자 교육을 한다지만 일회성인 경우가 많고 내용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식사 내용을 제한하는 식이요법을 교육해도 환자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환자는 당뇨병에 좋은 음식, 안 좋은 음식, 이런 식으로만 받아들이죠. 어디에 특효인 음식, 사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규칙적으로 알맞은 양을 골고루 먹는 것이 중요하죠.”
당뇨병은 완치가 불가능한 만성 질환이다. 생활습관의 교정과 약물요법으로 혈당 관리를 하면서 합병증을 예방하거나 최대한 늦추는 것이 최선이다. 생활습관을 교정하는 교육과 치료 없이 혈당을 낮추는 약만 먹으면 다시 나빠질 확률이 높다. 지속적인 자가 관리가 이루어진다면 희망적이다. 더 적은 용량의 약으로 치료할 수 있고, 인슐린 치료로 전환하는 시기도 늦출 수 있다. 합병증 발생률이 감소하고 발생 시기도 지연된다.
당뇨병 환자 위한 자기주도적 관리와 코칭
‘S진료노트’ 앱 개발
문제는 어떻게 하면 환자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끔 하느냐다. “환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침을 주며, 환자가 몸의 변화를 실제로 느끼면서 동기를 부여받고, 꼬박꼬박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박철영 교수는 모바일 헬스케어를 적극 활용해서 이 난제를 해결했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당뇨병 환자가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고 의료진의 맞춤형 피드백을 받도록 한 것이다.
박 교수는 2012년에 혈당과 혈압, 체중, 식사유형, 운동내용 등을 환자 스스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앱을 개발해 6개월의 임상시험을 거쳤다. 2013년 6월에는 미국당뇨병학회에서 스마트폰 앱을 통해 병원에서 맞춤형 정보를 받으면, 당뇨병 관리에 더욱 효과적이라는 임상시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정보 입력과 조회 빈도가 높고, 병원에서 보내는 메시지를 잘 확인하는 환자일수록 혈당관리가 잘됐다는 내용이다. 이후 계속 업그레이드를 하다 본격적으로 선보인 것이 ‘S진료노트’다.
‘S진료노트’ 앱은 강북삼성병원 내원환자를 위해 개발됐다.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조회할 수 있으며 최대 3년간의 종합 그래프로 추이도 살필 수 있다. 처방전과 진료 내역도 확인할 수 있으며, 진료예약과 검사 주의사항도 안내한다. 당뇨병에 관한 다양한 정보도 제공하며, 병원에서 진료한 내용을 환자에게 알려주고 공유한다.
“S진료노트를 보면 환자에게 꼭 알려야하는 검사결과 항목을 넣어뒀어요. 3개월 평균 혈당치인 당화혈색소, 혈압, 콜레스테롤 등입니다. 환자에게 알리는 이유는 조절 목표 때문이에요. 환자마다 조절 목표가 있는데, 예전에는 의사 혼자만 알았어요. 환자에게는 조절이 잘된다, 안 된다, 이렇게만 말했고요. 지금은 환자에게 3년 치 검사결과를 알려주고 공유하는 거죠. 목표치가 얼마라는 것도 말해주고요. 그러면 환자도 관심을 갖고 의식적인 노력을 하게 됩니다.”
박철영 교수는 환자에게 검사결과를 알려주고 조절 목표 수치를 공유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여러 번 강조했다.
“의사와 환자의 공동 목표가 명확하게 설정되는 것이죠. 치료도 서로 힘을 합해서 공동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으로 되고요. 예를 들어 당화혈색소가 7%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목표인데 지금 8%이니까 세 달 동안 분발해서 목표를 달성하자고 하면 환자가 달라집니다. 지금 생활습관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개선하고 관리할지 대화를 하면 환자에게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잖아요. 옛날에는 환자가 약 잘 먹는 것 외에는 달리 할 게 없었어요. 의사로서도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식사량 잘 조절하며, 술 마시지 말고 간식을 피하라는 추상적인 멘트 밖에 할 수 없었어요. 이제는 생활습관을 체크하고 교정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거죠.”
진단받았을 때 초기 집중치료가 중요
약물치료와 인슐린치료를 무조건 거부?
최선의 치료를 포기하는 것
“흔히 당뇨병은 합병증이 결국 올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실제로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먼저 당뇨병이 생기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공복혈당장애 등 당뇨병 전단계에서 당뇨병으로 이행하는 것을 예방하면 그런 문제들이 훨씬 줄겠죠. 치료 시기도 중요합니다. 초기에 치료를 시작하느냐, 진행된 상태에서 치료하느냐에 따라 예후가 달라집니다. 합병증이 생기더라도 5년 만에 올 것이 15~20년 뒤에 발생하는 편이 훨씬 낫잖아요.”
초기부터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데 약 복용을 거부하거나 인슐린 주사를 안 맞으려는 환자가 많다. 약을 한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끊을 수 없고, 약의 부작용도 많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인슐린 주사는 마지막 단계의 치료라는 생각이 강하다.
“초기에 적극적인 치료를 하면 장기적으로 볼 때 합병증이 더 적고, 더 적은 약을 쓰며, 인슐린을 맞는 비율도 훨씬 적습니다. 당뇨가 진단될 때 췌장의 베타세포는 이미 최소 50%가 없어진 상태에요. 철저하게 혈당을 조절하고 췌장을 보호하는 약물치료를 해야죠.”
박철영 교수는 대학병원에 찾아온 이유를 다시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현 시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를 받으려고 올 것일 텐데, 약물 치료나 인슐린 치료는 무조건 싫다고 하면 결국 최선의 치료를 마다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편하고 마음에 드는 것만 찾다가 생긴 질환이 당뇨병이다. 치료에서도 똑같은 태도를 고집하면 악순환을 되풀이할 뿐이다. 완치가 어려운 만성 질환이라는 말을 들으면, 당장 죽을병은 아니니까 적당히 지내다가 증상이 심해지면 치료하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고 제대로 관리하면 질환인 듯 아닌 듯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옆에서 계속 격려하는 박철영 교수 같은 코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마라톤 코스를 완주해 볼 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