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도암, 췌장암, 간암
이 모든 것은 그를 통해 해결된다
외과 이성열 교수
좋은 암은 형용모순이다. 간혹 경중을 따져서 불행 중 다행이라며 위안을 삼을 뿐이다. 발생률 1위인 갑상선암은 발생 부위에서 벗어나지 않은 ‘국한' 단계의 5년 상대생존율이 100.6%다. 일반인의 기대생존율을 오히려 앞선다. 반면 8위인 췌장암은 30%를 넘지 못한다. 주위 장기나 조직, 림프절을 침범한 ‘국소 진행' 단계나 멀리 떨어진 부위로 전이된 ‘원격 전이' 단계는 따질 것도 없다. 발생률에 비해 치명적인 간담췌 계열의 암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여지조차 없는 걸까? 궁금증을 안고 외과 이성열 교수를 만났다.
대장암의 간 전이
너무 좌절할 필요 없어
이성열 교수의 전문 분야는 간암, 담낭암, 담도암, 췌장암 등의 수술적 치료다. 담석증을 치료하기 위한 담낭 절제술도 빼놓을 수 없다. 우선 간암부터 질문했다.
“간암은 넓게 보면 간세포암, 간내 담도암, 전이성 간암 등 세 가지가 있어요. 간암이라고 하면 대체로 간세포암을 가리키죠. 담도는 간에서 만들어진 쓸개즙이 십이지장으로 내려가는 길이에요. 담관이라고도 하죠. 위치에 따라 간내 담도와 간외 담도로 나뉘는데, 간내 담도암은 간암으로 취급해요. 전이성 간암은 다른 장기의 암이 간으로 전이된 것을 말하죠.”
이 교수는 간내 담도암과 전이성 간암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 특히 대장암이 간으로 전이된 경우를 여러 번 언급했다.
“대장암이 가장 많이 전이되는 부위가 간이에요. 무조건 좌절하고 절망하실 일은 아닌 게, 대장암은 성격이 온순하고 예후가 좋은 편이거든요. 간으로 전이됐더라도 암을 절제하면 초기 췌장암보다 5년 생존율이 더 높아요. 수술만으로도 그만한 생존율을 얻을 기회가 생긴다고 위로하고 설득하죠. 실제로 수술과 추가 항암치료로 효과를 보신 분들이 많아요.”
경계성 절제가능형 췌장암도 수술이 가능한 상태로
끌어올리면 호전의 기회가 있어
담낭(쓸개)은 쓸개즙을 저장하는 주머니이고, 담도(담관)는 쓸개즙이 지나가는 길(관)이다. 담낭은 간과 달리 완전히 떼어내도 문제가 없다. 담낭암은 담낭 절제술이 기본이고, 필요하면 간이나 다른 부위까지 절제하기도 한다. 간외 담도암은 상부, 중부, 하부 담도암으로 나뉜다.
“중상부 이상은 대부분 간 절제가 동반되는 수술이고, 하부는 췌장암에 준해서 수술해요. 담낭 및 담도, 췌장 머리, 십이지장, 위장의 일부까지 함께 절제하는 췌십이지장 절제술(휘플씨 수술)을 해야 하죠. 간 절제술과 췌십이지장 절제술은 외과 수술의 꽃이라고들 해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위험한 순간도 있지만 수술실에서 늘 포기하지 말자고 혼잣말을 되뇝니다. 끝까지 하다 보면 결국은 되더라고요.”
담낭·담도암은 조기 진단이 어렵고 예후도 나쁘다. 원격 전이 단계에서 진단받는 비율이 24%이고 5년 상대생존율은 2.5%에 불과하다. 병기를 통틀어도 5년 생존율이 29%로 낮다. 그나마 췌장암에 비해서는 나은 편이다. 황달이나 발열, 복통 같은 증상이 상대적으로 일찍 나타나기 때문이다. 췌장암은 45% 이상이 원격 전이에서 발견되고 그때 5년 생존율은 1.7%다. 전체적으로도 10%가 채 되지 않는다. 그래도 수술 사망률이 떨어지고 생존율은 조금씩 올라가는 추세다.
예전 같으면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했을 환자군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고려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절제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경계선에 걸친 ‘경계성 절제가능형(borderline resectable) 췌장암’을 절제가능형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로 30~50% 정도가 절제 수술이 가능한 상태로 된다.
“담도암이든 췌장암이든 결국 절제 수술이 이뤄져야 해요. 그런데 10명이 암 진단을 받는다면 실제로 수술할 수 있는 환자는 서너 명뿐이었죠. 그 수술받는 환자 10명 중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는 다시 서너 명밖에 없었고요. 그래도 수술을 통해서 좋은 예후를 얻을 기회가 있다는 건 의미가 크죠. 경계성 절제가능형을 수술이 가능한 상태로 올려놓는 것에 초점을 두는 이유도 바로 그거예요.”
국내에서 두 번째로 로봇 단일통로 담낭 절제술 시작
각종 학회에서 초청 연자로 발표
담석증은 담낭이나 담관에 돌(결석)이 생기는 질환이다. 복통, 발열, 황달 등이 주요 증상이다. 담낭·담도암의 유발 인자이므로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신장, 방광, 요관 등 요로계에 돌이 생기는 요로 결석과는 다르다. 흔히 돌을 깬다고 말하는 치료는 요로 결석에 해당하고, 담석증은 담낭 절제술이 기본이다.
“담낭을 떼어내는 수술은 개복, 복강경, 로봇 등 세 종류가 있어요. 요즘은 거의 다 복강경 수술이나 로봇 수술이에요. 해부학적 구조의 변이, 출혈성 영향, 공간 확보 등의 문제가 있을 때는 중간에 개복 수술로 전환하죠. 우리 병원의 신준호 교수님이 복강경 담낭 절제술을 우리나라에서 두세 번째로 도입하셨어요. 저는 거기에 단일통로 복강경 수술과 로봇 수술도 해요. 로봇 단일통로 담낭 절제술은 제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시작했어요. 담낭암이든 담석증이든 담낭 쪽에서는 우리 강북삼성병원이 선도적이라고 할 수 있죠.”
단일통로(단일공) 복강경 수술은 배꼽을 절개해서 통로를 만든 후 카메라와 기구를 삽입한다. 구멍을 여러 개 뚫는 일반 복강경 수술보다 통증과 회복, 미용 등에서 유리하다. 로봇 수술은 3차원 확대 영상과 로봇 팔 덕분에 정밀하고 안정적인 수술이 가능하다. 단일통로 로봇 수술은 그 둘의 장점을 합친 것이다.
이성열 교수는 작년에 아시아태평양 내시경·복강경학회에서 로봇 단일통로 담낭 절제술에 관해 초청 연자로서 구연 발표했다. 대만 로봇수술학회에서도 초청을 받아 강연을 했다. 최근에도 구연 발표와 논문 게재를 계속하는 등 이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포기하지 마세요
저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고령일수록 몸 여기저기에 탈이 나고 특히 암 발생률이 증가한다.
“제 환자의 대부분은 60대 이상이에요. 평균 연령이 84세인데 그냥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여러 기준에서 봤을 때 충분히 수술이 가능하고, 득실을 따져도 수술의 이득이 크다면, 80~90대라도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야겠지요. 제가 집도한 환자 중 최고령은 99세의 담석증 환자였어요. 83세의 담낭암 환자도 기억나네요. 전신 상태가 양호했고 환자 본인도 수술에 적극적이셨죠. 두 분 모두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만류했지만 저에게 수술받고 잘 지내세요.”
이성열 교수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병원에 나와서 환자를 살핀다고 했다. 그 정도면 특별한 진료철학이나 좌우명이 있을 듯했다. 이 교수는 말없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메모를 보여줬다. 힘들 때마다 들여다본다는 글귀들이었다. ‘Never give up(절대 포기하지 마)’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제가 아직 40대 초반인데 다른 경우라면 70~80대 어르신들에게 선생님이라고 인사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나마 의사로서 마땅히 할 일을 하니까 그렇게 해주시는 거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Never give up’은 저와 환자 모두에게 하는 얘기예요. 포기하지 마세요. 저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어조는 담담했지만, 울림은 크고 오래 갔다. 간담췌 암의 위세에 눌렸던 초반과 달리, 인터뷰를 끝낼 때는 든든함과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제는 내가 스마트폰에 메모를 저장해야겠다. 강북삼성병원에 이성열 교수가 있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