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삶을 지키는 의사
송태종 교수 연구실 벽 한쪽에는 편지와 메모가 가득 붙어있다. “이제까지 환자들이 준 것을 다 붙여뒀죠. 힘들 때 그걸 보면 기운이 나요. 의사란 게 도와주려고 하는 직업인데, 정말 도와줄 수 있으니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퇴원하는 환자에게 가장 많이 드리는 말씀도 그동안 치료방침에 잘 따라줘서 정말 고맙다는 거예요." 대학병원 의사라면 당연히 할 일을 하고 있고, 환자를 도울 수 있어서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는 의사. 질병 퇴치를 넘어 여성의 삶을 지키는 의사. 산부인과 송태종 교수를 만나봤다.
자궁과 임신능력을 보존하는 수술
호르몬치료도 적극적으로 시행
“저는 산부인과에서도 특히 부인과 질환을 진료합니다. 자궁근종이나 난소종양 같은 양성종양과 자궁경부암, 자궁내막암, 난소암 등 부인암을 다루죠. 양성질환 환자가 70~80% 정도 됩니다.”
자궁근종은 여성에게 아주 흔하게 발생하는데, 40대 중반에 정점에 다다랐다가 폐경 이후에는 저절로 줄어들거나 없어진다. 여성호르몬과 관련이 많기 때문이다. 자궁근종은 자궁에 혹이 생기는 데 반해, 자궁선근증은 자궁 자체가 부어서 커지는 질환이다. 둘 다 초음파로 확인이 가능하니 2년에 한 번은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
송태종 교수는 임신능력을 보존하는 치료를 강조했다.
“여성호르몬에 노출되는 기간이 길면 발병률이 높아지는데, 요즘은 결혼과 출산 연령이 점점 높아지잖아요. 저출산 시대라지만 적어도 하나 정도는 꼭 낳고 싶어하는 편이고요. 따라서 임신능력을 보존하는 치료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옛날에 는 자궁근종이라면 자궁을 적출했는데 요새는 되도록 자궁을 보존하면서 근종만 제거하는 수술을 많이 하는 경향이죠. 난소종양도 마찬가지고요. 저 역시 임신능력을 보존하는 수술과 치료에 집중하고 있어요.”
자궁을 보존하는 방법에는 자궁근종이나 난소종양만 따로 떼어내는 수술 외에 다른 것도 있다. 바로 호르몬치료다.
“자궁내막암도 아주 초기인 경우에는 수술하지 않고 호르몬치료로 완치가 가능해요. 예전에는 수술로 자궁을 적출했죠. 호르몬치료는 작년에 미국 표준 진료지침에 올랐어요. 검증이 된 최신 치료죠. 국내에서는 제가 빨리 시작한 편이예요. 젊은 환자들은 아무래도 자궁 보존에 관심들이 많다 보니 일부러 우리 병원에 찾아오시기도 해요.”
양성질환 95%는 단일공 복강경 수술
섬세한 수술에 강점 있는 로봇수술도 활발
강북삼성병원에서는 자궁을 보존하든 적출하든 양성질환은 거의 대부분 복강경 수술로 한다. 자궁경부암과 자궁내막암 수술도 마찬가지다. 특히 양성질환 복강경 수술은 95% 이상 단일공으로 한다. 복강경 수술은 복부를 광범위하게 절개하는 개복수술과 달리 작은 구멍 서너 개만 뚫는다. 흉터가 작을 뿐 아니라 통증과 합병증이 적고 회복도 빠르다. 단일공 복강경은 말 그대로 구멍을 하나만, 그것도 배꼽을 절개한다. 복강경의 이점이 극대화되고 특히 흉터가 거의 남지 않는다. 다만 술기가 까다로워서 의사의 숙련도가 필요하다.
“처음 수술을 배울 때부터 아예 단일공 복강경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오히려 편하고 익숙합니다. 아직 부인암에는 적용하지 않지만 양성질환은 거의 다 단일공 복강경으로 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홍콩 학회에 초청연자로 가서 단일공 술기를 시연하기도 했죠. 단일공 복강경 수술을 하려고 우리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아요. 모르고 오신 환자들도 단일공으로 한다고 말씀드리면 굉장히 좋아하시죠. 특히 젊은 환자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아요.”
송태종 교수는 로봇수술도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다. 아직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서 비용 부담이 크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장점이 아주 많다고 강조했다. “복강경 수술의 이점에 더해서 아주 미세하고 섬세한 수술을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근종을 떼어내고 자궁을 꿰매야 할 때, 복강경 기구는 직선형인데 반해 로봇은 관절이 있어서 자유롭게 여러 각도로 제대로 꿰맬 수 있어요. 근종이 여기저기 있어도 마찬가지죠. 선명하게 확대된 시야도 장점이고요. 결론적으로, 자궁 손상을 최소한으로 해서 자궁과 임신능력을 보존할 수 있는 거죠. 출산을 고려하는 젊은 여성이라면 투자를 고려할 만해요. 부인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고요.”
환자 만족이 최우선
의사와 환자는 동반자 관계
송태종 교수에게 수술받은 환자들은 만족도가 매우 높다. 송 교수가 환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들어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인상적인 몇 가지만 소개하겠다. 첫째, 환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따로 만들어서 계속 업데이트를 하고 있다.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면 컴퓨터 모니터를 환자 쪽으로 돌린 다음 말하자면 브리핑을 한다.
“그냥 말로 하는 것보다는 그림과 사진 등 시각 자료를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게 환자의 이해가 빠르고 쉬운 데다 기억에도 오래 남더라고요. 특히 나이 드신 환자들이 좋아하시죠.”
둘째, 수술실에서 미리 환자에게 인사를 하고 안심시킨다.
“환자들이 수술실에 들어가면 집도하는 주치의를 대부분 못 봐요. 그냥 누워 있다가 마취되는 거죠. 저는 수술실에서 환자에게 미리 제 얼굴을 꼭 보여드려요. 제가 수술을 할 거고, 열심히 잘할 거라고 안심을 시켜드리죠. 마취과 선생님들 말씀이 제가 인사를 하고 나면 환자들이 맥박도 괜찮아지고 안정되는 것 같대요. 처음에는 불편했죠. 그렇게 하는 선생님들도 안 계시고요. 5년 넘게 계속하다 보니까 이젠 익숙해졌어요.”
셋째, 부인암 환자들에게는 개인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부인암 수술 환자는 치료가 어느 정도 되면 제 명함을 드립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아무 때나 연락하라고 개인 전화번호를 알려드리는 거죠. 암이 무서운 게 언제든 재발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의사와 암 환자는 동반자 관계이거든요. 환자가 저에게 도움을 받겠지만, 저 역시 환자를 통해 배우거든요. 다음 환자에게는 그만큼 발전된 모습으로 진료할 수 있고요.”
뿐만 아니다. 송 교수는 연구에도 매진하고 있다. 2014년에는 우리나라 산부인과 의사들이 그해에 발표한 논문을 합산해서 실적이 가장 뛰어난 한 명에게 주는 상을 받았다. 국제학술지에 발표된 논문들의 인용지수 합계가 가장 높은 저자였던 것이다. 주로 단일공 복강경 수술, 부인암, 경계성 종양 등에 관한 논문이었다. 지금도 부인암 진료권고안 위원회와 부인암 수술 위원회에 소속돼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의 표준 치료를 따르는 의사가 되자는 게 제 모토입니다. 근거 중심 의학이라고 하는데, 막연한 경험이 아니라 확실한 근거에 입각해서 교과서적으로 치료하자는 거죠. 양성질환이라면 수술을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암이라면 정말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거든요. 환자들이 대학병원까지 오는 것은 제대로 치료를 받기 위해서죠. 현재의 표준 치료, 검증된 최신 치료를 말이죠. 그러려면 항상 연구하고 노력해야죠. 대학병원 의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환자를 도와줄 수 있어서 오히려 고마워
수술이 밀려서 인터뷰를 몇 번이나 연기할 정도로 바쁜데 어디서 이런 에너지가 나올까 궁금했다.
“제 연구실 벽 한쪽에 편지와 메모가 가득 붙어있어요. 이제까지 환자들이 준 것을 다 붙여뒀죠. 힘들 때 그걸 보면 기운이 나요. 의사란 게 도와주려고 하는 직업인데, 정말 도와줄 수 있으니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퇴원하는 환자에게 가장 많이 드리는 말씀도 그동안 치료방침에 잘 따라줘서 정말 고맙다는 거예요.”
대학병원 의사라면 당연히 할 일을 하고 있고, 환자를 도울 수 있어서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는 의사. 멋쩍게 웃는 송태종 교수의 얼굴에 오월의 맑고 싱그러운 기운이 가득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