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
갈수록 볼거리와 봐야할 것이 늘어나 는 세상이다. 현실 세계만큼이나 확장 된 사이버 공간 역시 기본적으로는 눈 을 통해 접속한다. 눈의 쓰임새와 중요성이 커질수록 눈 건강에 대한 관심과 위험 인자도 증가한다. 안과 최철영 교수를 찾아 궁금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 교수는 각각 노년층과 청년층에서 최다빈도로 시행되는 백내장 수술과 라식·라섹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막이식에서도 최첨단을 걷고 있다.
왕성한 학회 활동과 화려한 수상 경력
병원 홈페이지의 의료진 소개를 보면 최철영 교수의 직함과 수상 경력이 빼곡하다. 대한안과학회를 비롯하여 한국외안부학회, 각막질환연구회, 백내장굴절수술학회 등의 공 식 학회에서 상임이사는 물론 총무이사의 경력만도 도합 11년이 넘는다.
“나이에 비해 일찍부터 많은 직책을 맡은 편입니다. 해당 주요학회의 총무이사를 두루 경험하였고 각막 및 외안부 분야에서 는 3회 연임을 하고 있습니다. 아시아태평양 백내장수술 학회의 상임이사도 겸하고 있으며, 국제학술지의 국내판 편집장도 5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덕분에 많은 교류와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그걸 계기로 외국 환자도 상담 및 수술을 받으러 오기도 했습니다."
앞에 나서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가 아니었다. 꾸준한 연구와 뛰어난 성과가 비결이다.
“주요 국제학회에 논문 한 편씩은 거의 다 발표했습니다. 안과학과 관련해서 SCI(과학기술논문 색인지수)에 집계되는 학술지가 50종쯤 된다면 상위 10종에는 각각 한 편 이상은 다 실렸죠. 제 이름을 딴 수술법도 있습니다. 2010년에 안과학 (Ophthalmology)이라는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에 소개됐어요. 결막 질환을 치료 할 때, 잘라내고 꿰매거나 이식하는 대신 고주파로 아주 간단하게 수술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안과 의사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접해본 내용입니다.”
국내 학술대회는 말할 것도 없고 굵직한 국제학회에서도 상을 연거푸 받았다. 2008년부터 매년 수상했고, 2011년에는 유럽백내장굴절수술학회에서 1등상을 받고 심포지엄 발표까지 했다.
광학 연구의 메카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1년간 연구교수로
“하이델베르크대학교는 노벨상 수상자를 58명이 나 배출했습니다. 제 연구실 바로 옆 건물만 해도 노벨상 수상자 2명을 배출했었습니다. 이 대학교 는 특히 광학(光學)이 유명하죠. 사실 백내장이나 라식 등 안과 수술은 광학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백내장 수술만 보면, 혼탁해진 수정체를 깨끗한 인공수정체로 교체하는 거예요. 당연히 렌즈 자체가 아주 중요하겠죠. 어떤 렌즈를 삽입하는가 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져요.”
최철영 교수가 독일에서 연구한 분야가 바로 광학이다. 이미 2008년에도 미국 로체스터 광학연구소를 다녀왔다. 광학 실험과 안과학의 접목을 선구적으로 접하고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독일에서 돌아올 때 필요한 기자재를 많이 들여왔어요. 개인적으로 연구비를 끌어 모았지요. 이참에 국내 최초로 백내장 노안과 관련한 광학연구소를 성균관대학교 부설로 조그맣게나마 출범시킬 계획입니다. 독일에서 보니까 30~40분 만에 모든 결과가 다 수치화돼서 나오는 전용 기계도 있더라고요. 뜻이 맞는 몇몇 교수님들과 힘을 합쳐서 어떻게든 내년쯤에 국내 최초로 도입할까 합니다. 그래야 어떤 최신 렌즈가 수입되더라도 우리가 직접 측정해서 특성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점차 기술의 원천에 접근할 수 있고, 데이터와 경험도 축적할 수 있겠지요. 또 렌즈의 특성을 알기 쉽게 모든 면을 수치화해서 국내 표준도 마련할 수 있고요.”
백내장과 노안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다초점 렌즈,
각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해야
백내장 수술은 혼탁한 수정체를 깨끗한 인공렌즈로 교체하는 것이다. 이때 다초점 렌즈로 바꾸면 가까운 것이 잘 보이지 않는 노안까지 해결할 수 있다. 초점이 멀리, 중간, 가까이로 나눠져서 모두 맑고 밝게 보인다. 추가 비용도 물론 문제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어떻게 하면 자기에게 딱 맞는 맞춤형 렌즈를 고를 수 있냐다.
“환자로서는 정보나 지식이 없으니까 의사가 추천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거나 가격만 고려하게 되죠. 비싸니까 좋은 거겠지 막연히 기대하면서 말이죠. 의사라도 다양한 렌즈의 특성과 장단점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결국 자기가 경험한 몇 개만 고집하게 되죠. 하지만 아무리 비싼 최신 렌즈라도 안 맞는 사람이 있거든요. 환자마다 딱 맞는 렌즈가 달라요. 굉장히 오래 전에 개발된 저가 렌즈가 어떤 환자에게는 가장 좋을 수 있어요. 그걸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선택하면 최선, 최적의 결과를 얻기 어렵겠죠.”
여러 번 강조했듯이 렌즈 자체의 특성을 잘 아는 것이 첫째다. 둘째는 환자의 생활 패턴과 요구를 충분히 파악해야 한다.
“주로 실내에서 생활하고 문서를 많이 보는 사람, 실외활동이나 운동을 즐기는 사람, 멀리와 가까이가 적절하게 섞인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 등 환자의 상황과 니즈가 모두 다릅니다. 거기에 맞게 특화된 렌즈를 골라야 만족감이 크고 불편도 없겠죠.”
다양한 렌즈의 특성을 잘 알고 있고 환자의 상황도 충분히 파악해야, 그 환자에게는 어떤 타입의 무슨 렌즈가 가장 잘 맞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 사실 백내장 수술은 건수가 가장 많은 최다빈도 수술입니다. 그렇지만, 하는 입장과 달리, 받는 환자로서는 단 한 번입니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기에,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충분히 고려하려고 애씁니다. 환자 개인에게 딱 맞는 수술을 하려고 말이죠.”
시력 교정 수술은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문제가 생긴다?
라식과 라섹은 시력을 교정하는 수술이다. 안경을 오래 낀 사람이라면 더구나 젊은 축에 든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수술을 고려해 봤을 것이다. 라식이냐 라섹이냐 선택을 두고도 머뭇거리지만, 무엇보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문제가 생길까봐 결국 단념하게 된다. 그렇게 좋은데 왜 의사들은 그냥 안경을 끼냐는 반문까지 들으면 불안감과 의구심이 더욱 커진다.
최철영 교수는 라식보다 라섹을 선호한다고 했다. 5년 전부터 라섹 위주로만 권했다.
“옛날에는 라섹을 하면 통증이 심하고 시력회복이 더디다고 했는데 요즘은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레이저 기계가 아주 좋아졌기 때문이죠. 통증이 거의 없고 시력회복도 2~3일 지나면 80~90% 이상 나와요. 금요일에 수술하면 월요일에 출근해서 웬만큼 업무를 볼 수 있을 정도죠. 친척이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 장기적인 안전을 고려해 라섹을 권했어요. 제가 아는 안과 의사들도 모두 라섹을 받았고요. 본인이 라식을 받은 경우는 한 명도 없죠.”
라섹이 더 낫다는 말보다 안과 의사들도 수술을 받는다는 대목이 더욱 솔깃했다.
“최근에 전공의를 마치고 나간 의사들 중에서 저에게 라섹 수술을 받은 사람이 6-7명입니다. 4년 동안 옆에서 지켜보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안전하고 좋다는 것을 아는 거죠.”
라섹 수술을 한다고 노안을 피할 수는 없다. 60대가 되면 돋보기를 써야 한다. 나이에 맞는 목표치에서 오버하면 노안이 더 빨리 올 수는 있다. 각 연령에 맞게 목표치를 설정하는 것이 수술의 노하우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너무 가격만 따지는 것은 좋지 않아요. 공산품을 사는 것이 아니잖아요. 할인 행사를 한다고 덥석 선택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겪을 수 있어요. 수술 스케줄이 지나치게 빡빡한 병원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를 깎고 나면 미세하게 밸런스가 바뀌기 때문에 항상 보정을 해야 해요. 환자마다 새로 맞춰야 하죠. 그렇게 따지면 20~30명씩 수술할 수가 없어요. 공장 기계처럼 막 돌린다는 말은 아침에 한번 맞추고 그대로 쭉 한다는 말이죠.”
실제로 수술을 담당할 의사와 충분히 상담을 할 수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상담과 설명은 비전문가인 코디가 맡고 정작 의사는 수술실에서 처음 보는 경우라면 사태가 심각하다. 눈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누구라도 이름만 들으면 금세 알 연예인들도 많이 찾아와요. 한류 스타들도 여럿 수술을 받았어요. 협찬이나 광고비를 받으면서 수술할 수도 있을 텐데 굳이 저에게 왔죠. 성격이 꼼꼼하거나 각막이 좀 특이한 케이스라서 여기저기 알아보다 온 경우예요. 일단 레이저로 깎고 나면 되돌릴 수가 없으니까요.”
최첨단 각막이식술인 각막 내피 치환술(디멕DMEK)을 본격적으로 시행
각막은 안구의 가장 바깥쪽 표면에 있는 둥글고 투명한 막이다. 검은자위에 해당하는 부위다. 주된 역할은 눈을 보호하고 빛을 통과·굴절시키는 것이다. 투명성이나 형태에 문제가 생기면 잘 보이지 않게 된다. 맑고 밝은 세상의 빛을 되찾으려면 각막 이식이 최후 수단이다.
“각막 이식을 받는 경우를 보면 선천적으로 각막이 약한 환자가 가장 많아요. 다음으로는 백내장 수술의 후유증으로 각막이 망가진 분들이죠. 각막이 약한데 정확한 판단 없이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가 뒤늦게 문제가 생긴 경우도 있어요. 당장은 괜찮았지만 나중에 각막이 하얗게 돼서 오시죠. 백내장 수술은 처음에 굉장히 잘해야 합니다.”
10여 년 전까지는 각막 이식이라면 각막 전체를 잘라내서 바꾸는 방법뿐이었다. 시력회복이나 거부반응 등에서 만족스럽지 않은 면이 있었다. 최신 수술법은 안쪽에 필요한 층만 바꾸는 것이다. 국내에 주로 소개된 디섹(DSEK)은 내피세포가 달린 조직까지 이식하지만, 디멕(DMEK)은 훨씬 얇게 세포층만 바꾼다.
쓸데없는 조직은 제외하고 내피세포만 이식하기 때문에 시력회복 등 기능적으로 가장 유리하다. 반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서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다. 최철영 교수는 독일에서 고난도의 최첨단 디멕도 연수했다. 강북삼성병원은 디멕을 위주로 최첨단 특수 각막 이식을 본격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어떤 환자도 포기할 수 없고, 최선을 다했기에 떳떳
최철영 교수에게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는지 물었다.
“필리핀에 유학 간 중학생이었어요. 렌즈를 끼다가 감염 탓에 눈이 하얗게 녹았어요. 잘라내야 할 형편이었죠. 필리핀 의사가 빨리 큰 병원에 가라고 해서 저에게 왔더라고요. 나중에 학회에서 사진을 보여주며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퀴즈를 냈더니 대다수가 수술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어요. 수술하면 가능성이 있겠냐고 물었더니, 가능성은 없지만 눈을 살리려면 그 방법뿐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반응이었죠. 하지만 저는 수술하지 않고 약물 치료만 했어요. 우리 병동의 간호사들이 진짜 엄청나게 고생했죠. 5명이 매달려서 5분 간격으로 항생제 안약을 계속 넣었어요. 밤낮없이 보름 동안 말이죠. 20일, 한 달, 40일, 두 달 등 시간이 흐를수록 차도가 뚜렷하게 호전됐어요. 3년 정도 지나서는 시력도 웬만큼 살렸죠. 국제학회에 사례 보고도 했습니다.”
밤낮없이 보름 동안 5분 간격으로 안약을 넣어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눈을 살렸다.치료전(左), 치료후(右)
사실 핵심은 약물이냐 수술이냐가 아니었다. 어떤 경우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매달려서 최선을 다한다는 게 중요했다.
“염증으로 인한 유착 탓에 동공이 다 말라붙어서 없어진 실명 환자였습니다. 여기저기서 수술해도 소용없다는 말을 듣고 포기한 상태였어요. 수술은 잘됐어요. 지금도 병원에 오시는데 아주 만족하세요. 수술해도 소용없다고 말하는 심정도 이해는 됩니다. 수술만 하면 아주 좋아지리라는 기대에 비해 시력이 0.1~0.15 정도만 나올 것 같으니까 말리는 거죠. 기대에 못 미치면 불만과 원망이 쏟아질 게 뻔하니까요. 나중에 골치 아파질까 봐 아예 개입을 하지 않죠. 하지만 실명과 0.1은 천양지차입니다. 보호자나 주변 사람과 달리 환자 본인은 작은 변화에도 만족하시는 편입니다.”
최 교수는 수술을 적극적으로 권하는 편이라고 한다. 나중에 원망을 듣더라도, 최소한 그 정도라도 나오는 게 실명보다 낫겠다는 판단이 들면 강력하게 권유한단다.
“좋아질 확률은 10~20% 정도에 불과하지만 적극적으로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봐요. 대안이 없고 달리 잃을 것도 없는 반면 대부분은 아주 조금이라도 호전되고 의외로 굉장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잖아요.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요.”
최 교수는 환자 본인만 만족하면 다른 모든 소리는 흘려듣는다고 했다. 의학적 판단에 따라 최선을 다했고 양심에 거리낄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란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니까 그냥 그대로 살라고 말할 수 없단다. 어둠 속에 갇힌 고통을 모른 척할 수 없기에. 희미하더라도 빛의 희망이 분명 있기에. 최 교수는 오늘도 환자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