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 소리 대신 미소로 아기와 첫 대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출산을 앞두고 너무 긴장되고 두려웠지만, 지금은 그때가 제 생애 최고의 멋진 순간이 되었습니다.” (로미 엄마)
“유도분만, 무통분만으로 처음 두 아이를 낳을 때는 분만이 힘들고 외롭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요하고 편안하게, 기쁜 마음으로 아이의 탄생을 기다렸습니다. 산후 몸 상태도 이전보다 가뿐하여 만족스러웠습니다.” (쑥쑥이 엄마)
(이상은 Easy Birth 네이버 카페 cafe.naver.com/ilovefetus의 후기 게시판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강북삼성병원 자연출산센터 ‘이지버스(EASY BIRTH)’에서 아기를 출산한 산모들의 후기다. 대부분의 산모들이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고통으로 기억하는 분만 과정을 이렇듯 행복한 경험으로 만들어준 주인공, 산부인과 이교원 교수를 만나보았다. 이교원 교수는 자연출산과 태교의 권위자로, 현재 강북삼성병원 자연출산센터 ‘이지버스(EASY BIRTH)’ 센터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출산 문화를 선도하다 : 사랑수탄생
‘자연출산’이란 무통 주사, 촉진제 사용, 회음부 절개, 내진, 관장 등을 활용하는 ‘자연분만’과는 구별되는, 의료적 개입을 최소화하여 산모가 주체가 되도록 하는 출산법이다. 산모가 의료적 처치에 대한 부담감 없이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출산할 수 있는 것이 자연출산의 장점이다. 이교원 교수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출산하는 산모뿐만 아니라 아기에게도 탄생이 행복한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사랑수탄생’이라는 출산법을 적용하고 있다.
‘사랑수탄생’은 이교원 교수가 직접 고안하고 이름을 붙인 출산법이다. “열 달 동안 따뜻한 양수 안에 있던 태아가 갑자기 환한 공기 중에 나오면 달라진 환경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이른바 ‘출생 트라우마(Birth Trauma)’인 거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랑수탄생에서는 조명을 어둡게 하고 소음을 차단하여 출산이 이루어지 환경을 자궁과 비슷하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출산 직후 아기를 양수와 유사한 온도의 물에 넣어주어 아기의 심리적, 신체적 충격이 줄여 줍니다.”
따뜻한 물에 들어간 아기는 엄마, 아빠는 물론 탄생의 순간을 함께 한 의료진으로부터 ‘사랑해’라는 환영의 메시지를 듣고, ‘각인’의 과정을 갖는다. “각인이란 아기가 엄마, 아빠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침으로써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는 것입니다. 조류의 새끼는 알을 깨고 나오자 마자 처음 눈 마주친 대상을 어미로 생각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만큼 탄생 직후의 감각이 중요한 것이죠. 기존의 분만이 산모와 아기가 신체적으로 이상이 없도록 하는 것에만 치중했다면, 산모와 아기의 정서적인 면, 아기가 태어나서 느끼는 첫 감각, 오감까지 고려하여 출산과 탄생이 가장 이상적인 경험이 되도록 한 것이 ‘사랑수탄생’입니다.”
이교원 교수는 결혼 문화, 장례 문화 등 인간은 삶의 중요한 계기마다 고유의 의식과 문화를 만들어 왔는데, 유독 출산은 모두가 고통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고 지적하며 “사랑수탄생을 통해 출산이 건강하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바람을 나타냈다.
│생애 첫 1시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2008년에 처음 시도된 이후 지금까지 사랑수탄생 출산법을 통해 태어난 아기는 500명 가까이 된다. 이교원 교수는 출산 환경에 따라 아기들이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 수없이 보아왔다. “일반 분만으로 태어나 출생 직후 의료적 처치를 받는 아기들은 큰 고통이라도 받는 듯 격렬하게 웁니다. 하지만 사랑수탄생으로 태어난 아기들은 많이 울지 않습니다. 엄마가 태교를 열심히 했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고요. 그런 아기들을 엄마 곁으로 데려다 주어 눈을 마주치게 하면 눈을 뜨기도 하고, 웃는 표정을 짓습니다.”
이 때의 기억은 아기의 무의식에 각인되어 평생 머물게 되며, 아기의 인성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출산 과정이 단지 그 순간 이상으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교원 교수는 ‘생애 첫 1시간이 인간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저서를 통해 바른 태교와 출산 방법, 출산 후 경험이 아기의 인성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지 상세하게 기술한 바 있다.
“계속 연구하다 보니 정말 태교, 출산과정이 중요하더라구요. 많은 사람들이 중요성을 알았으면 해서 그 동안의 제 강의자료, 연구자료들을 모아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신뢰의 호르몬 옥시토신
아기가 이상적인 탄생을 맞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는 ‘옥시토신’이다. 옥시토신은 모성애, 타인에 대한 친밀감, 신뢰감을 갖게 하는 호르몬으로, 특히 출산 중인 산모에게서 다량으로 분비되어 분만과 모유 분비를 촉진시킨다.
“출산 때 분비되는 옥시토신으로 인해 산모는 모성애를 갖게 되고, 옥시토신을 듬뿍 받은 아기는 엄마와의 유대감,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옥시토신이 사람 사이의 신뢰를 높인다는 사실은 스위스 취리히 대학의 에른스트 페르 교수가 ‘네이처’지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통해서도 입증되어 있습니다. 반면 옥시토신이 결핍되면 정서적으로 문제를 가진 아이로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교원 교수가 출산 시 충분한 옥시토신 호르몬에 노출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옥시토신 호르몬은 현재 이교원 교수가 연구 방면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옥시토신은 정서적인 면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면역력을 강화하는 데도 꼭 필요한 중요한 호르몬입니다. 수년 전 태교에 대해 연구하던 중 옥시토신 호르몬이 아직 연구될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기존에 진행했던 줄기세포를 이용한 암 치료 연구와 연계하여 옥시토신 호르몬에 대해 좀더 집중하여 연구할 계획입니다.”
│이상적인 부모가 되기 위한 필수과정 - 태교대학
이교원 교수가 이끌고 있는 강북삼성병원 자연출산센터 ‘이지버스(EASY BIRTH)’는 사랑수탄생을 포함하는 출산 과정 자체뿐만 아니라 임신 중 태교, 자연출산 준비교실 등 산모가 출산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임신 주차에 따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곳이다. 2014년 5월 개소하여 1년 남짓 되었을 뿐이지만 자연출산센터의 제왕절개 비율은 6.3%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고하는 기준 5~15%를 충족하는 등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 출산을 경험한 산모들 사이에서도 만족스러운 평가와 입소문이 이어지고 있다. (산모들의 후기는 자연출산센터 카페에 가면 볼 수 있다. http://cafe.naver.com/ilovefetus)
자연출산센터를 찾는 산모들은 태교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된다. 이교원 교수가 직접 강의를 맡고 있는 태교대학에서는 태교의 가치와 중요성,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태교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접근방법 등에 대해 배울 수 있다. “태교에서 중요한 것은 ‘공명’입니다. 태교라는 소통을 통해 엄마와 아기가 서로 공감하고 남다른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죠. 더 건강하고 행복한 아기를 낳으려면 임신 기간부터 지속적으로 이러한 ‘공명’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태교가 필요한 이유인 동시에 이교원 교수가 태교에 관심을 갖고 태교대학을 개설하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태교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아기뿐만 아니라 부모 역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 “엄마,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준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책도 많이 보고 공부를 하며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야 그만큼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산모 입장에서는 남편의 격려와 도움 없이 태교를 꾸준히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부부가 함께 태교 강의에 참석할 것을 권유합니다. 결과적으로 태교를 열심히 한 아빠들은 출산 후에도 아기와 시간을 많이 보내고 육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훨씬 가족적으로 변화하더라고요.”
"첫째 둘째를 낳았을 때는 젖 냄새만 맡게 한 뒤 신생아실로 데려가는 것과 달리 별이를 낳고 한 시간 가까이 안아주고 사랑수도 해 주시고, 아빠의 편지를 읽어주는 내내 전혀 울지 않고 편안해 하는 별이를 보니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름을 불러주니 눈을 떠서 엄마를 찾는 모습은 출산이 큰 축복이고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2014년 8월 25일 강북삼성병원 버딩룸에서, 별이 엄마 아빠가 - |
│서울 5궁 예술태교부터 미각태교까지
최근 이교원 교수는 태교대학 이외에 고궁답사, 요리체험 등의 태교를 통해 바람직한 태교문화 정착에 힘을 쏟고 있다. 임산부와 가족이 함께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창덕궁, 경희궁 등 5궁을 방문해 태교를 진행하는 ‘서울 5궁 예술태교’와 한국전통음식연구소와 연계해 산모와 가족들이 3~4명씩 조를 이루어 함께 음식을 만드는 ‘미각태교’가 그것이다. “그동안 태교대학을 운영해오면서 이론들을 전파하였는데 실제 어떻게 태교를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보여주고자 프로그램을 준비하게 됐어요. 실제 참여한 산모들의 반응도 아주 좋습니다” 이 교수는 이외에도 병원 내 계단걷기, 남산 걷기 등의 태교프로그램을 준비중이기도 하다.
│올바른 출산문화 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국무총리상을 수상
오랜 연구와 강의, 실제 사례에 대한 경험을 축적해온 만큼 이교원 교수는 태교와 자연출산의 장점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가 진료 외의 시간을 쪼개어 병원 안팎에서 강의를 하고, 책을 쓰고, 태교와 자연출산에 대한 정보를 담은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는 것도 그런 장점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이런 활발한 활동 덕에 이 교수는 작년 10월 태교 연구와 태교이론의 정립, 건강하고 행복한 태교와 출산문화의 저변 확대, 자연출산센터 운영으로 산모와 아기의 건강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태교와 자연출산에 대한 권위자로 다시 한번 인정을 받은 것이다.
│“바르고 건강한 아이들이 태어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의사로서 나의 사명”
이교원 교수는 최근 강북삼성병원 자연출산센터의 역할을 비포버스(BEFORE BIRTH) ‘애프터버스(AFTER BIRTH)’로 까지 한층 확대할 예정이다. 태교와 순산 프로그램을 교육하는 비포버스(BEFORE BIRTH), 사랑수탄생으로 순산을 맞이하는 이지버스(EASY BIRTH)에 이어 애프터버스(AFTER BIRTH)로 산후관리 서비스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출산 후 모유 수유 때문에 고생을 하고, 심하게는 산후 우울증까지 겪는 산모들을 보며 수유에 대한 교육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병원 조산사들이 인근 산후조리원과 연계하여 정기적으로 산모를 방문하고 모유 수유 교육 및 산후 관리를 돕는 서비스를 곧 시작할 예정입니다. 또한 우리 병원 웰빙케어링센터를 통해서는 출산 후 생길 수 있는 요실금이나 자궁탈출증 예방을 위한 물리치료를 시행할 것입니다.” 임신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산후 관리까지, 일반적인 산부인과 의사의 영역을 넘어서 임신과 출산을 더 이상적인 체험이자 문화로 만들고자 하는 이교원 교수의 의지가 드러난다.
이교원 교수는 태교와 자연출산에 대해 공부하면서 자신이 왜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는지에 대한 답을 얻었다고 한다. “태교와 사랑수탄생으로 좀더 올바르고 건강한 아이들이 태어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정성이 담긴 태교를 받고, 자연출산으로 엄마의 옥시토신을 흠뻑 맞으며 트라우마 없이 태어나 이타심을 갖게 된 아이들이 늘어난다면 학교 폭력, 아동학대, 자살 등 우리 사회에 팽배한 폭력적인 사건들이 점차 줄어들지 않을까요? 건강한 아이를 행복하게 낳고 기를 수 있는 여건이 충족될 때 우리 모두의 미래가 더 행복해지리라 믿습니다.” 열 달의 임신 기간과 열 시간 안팎의 진통 시간을 넘어 더 넓고 먼 곳을 보고 있는 이 교수의 뜻에 많은 이들이 ‘공명’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