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흩날리는 따스한 풍경이 펼쳐진 강북삼성병원. 어김없이 찾아온 봄처럼 한결같이 간질환 환자들을 위한 연구와 진료에 매진하는 조용균 교수를 만났다. 어린 시절 A형 간염을 앓은 것이 계기가 되어 간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체의 화학공장이라 불리는 간. 간은 몸속에 들어온 독소의 분해, 호르몬 합성, 영양소 대사까지 다양한 역할에 관여한다. 간이 손상되면 피곤감을 비롯해 다양한 증세를 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 간은 또 다른 특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오래 참는 인내형 장기 간
간은 인간의 장기 중에서 가장 크지만 질환이 생겼을 때 나타나는 증상은 뚜렷하지 않다. 간이 신호를 보내기 전에는 특별히 병이 생겼다고 느낄 수 없으며 결국 질환이 깊어진 후에야 발견해 뒤늦게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이는 회복률이 높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조용균 교수는 “간은 굉장히 오래 참는 인내형 장기이기에 듬직함과 진중함을 느낍니다. 물론 임상진료에서는 이런 면이 반대로 위험요소로 작용하지요. 흔히 침묵의 장기라 말하는 것처럼 간에 질병의 증상이 나타나면 이미 심각한 경우가 많아 조기발견을 위한주기적인 검사가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설명했다.
보통 간질환의 주기적 선별 검사로는 혈액 검사와 바이러스 항원항체 표식자 검사, 복부초음파 등이 스크리닝 검사로 필수적이다. 주기는 3~6개월에 한 번 정도가 적당하다. 검사는 증상과 환자 개인의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지만 조용균 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의료진과 환자의 유대감인 ‘라포(Rapport)’다.
“모든 질환이 그렇지만 간질환 치료에는따뜻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환자 대부분이 어려운 경제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고 간질환은 특성상 한번 발생하면 끝까지 관심을 기울여 의사와 함께해야 하는 질환이기 때문입니다.”
감염성 질환에서 대사성 질환으로, 변화하는 간질환
간은 2/3가 제거되어도 재생이 가능하다는 특성이 있어 다양한 수술법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국내 의료진의 수술 기술은 세계적 수준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치료법의 발전과 더불어 조용균 교수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의료사회적 변화에 따라 발병하는 간질환의 종류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바이러스 전염에 의한 B형 간염이 대세였던 반면, 백신 예방접종사업, 새로운 치료제 개발과 일반인의 인식 변화로 감염성 간질환은 크게 줄었다.
반대로 증가하는 간질환은 알코올·비알코올 간질환이다. 이는 음주, 비만과 운동부족 같은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인해 크게 늘고 있다.
조용균 교수는 특별히 비알코올 간질환에 관심을 두고 연구중이며 현재까지 국내 50편, 국외 40여 편의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조용균 교수는 이런 변화에 대해 ‘질병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고 표현했다.
“식생활의 변화와 운동량 부족에 따른 비만 인구가 많아지면서 간질환 발병 추세가 변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생활습관형 간질환이 대부분 증상은 뚜렷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지방간염, 간경변증, 간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사성 간질환은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여러 성인성 질환과 뿌리를 같이해 하나의 가족처럼 몰려다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마디로 간질환이 심각한 성인병 증상에 불을 붙이는 방아쇠 역할을 하는 거죠.”
특히 우리나라만의 큰 특징은 식습관이다. 주식인 흰 쌀밥,설탕과 같은 단당류가 가장 복병이다. 흰 쌀밥 대신 잡곡밥, 비스킷이나 초콜릿, 탄산음료 등의 간식 절제, 채식 위주의 식단이 조용균 교수가 전하는 식단 관리법이다.
간질환에 기울이는 관심과 사회적 노력 필요 개인이 할 수 있는 식단조절, 운동 이외에도 조용균 교수가 강조하는 또 다른 부분은 사회적 관심이다.
“요즘은 어린아이들이 과체중인 경우가 흔합니다. 청량음료나 액상과당이 많이 들어간 주스, 과즙음료를 쉽게 접합니다. 또한, 청소년에게 술이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술 광고를 텔레비전 같은 매체에서 늘 접할 수 있고 우리 문화 자체가 음주에 매우 관대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사회적 관심과 개입이 필요합니다. 소아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음식에 대해 교육하고 음주에 대한 사회적 규제 강화로 문화를 바꿔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술 소비량뿐 아니라 상습적 과음, 폭음과 같은 위험음주자도 증가하고 있다. 자기가 판단하고 절제해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음주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알코올로 문제를 겪는 환자들을 들여다보면 사회적 결핍이 시초가 되어 술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은 인간관계에 문제를 가져오고, 정신적인 불안과 결핍을 느끼게 한다. 이때 술은 현실 도피를 위한 도구가 되고, 질병의 발현으로 이어진다. 조용균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안타까움을 느낀다.
“알코올·비알코올 간질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고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서는 개별적 치료 이외에 사회 전체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일은 의료진만의 힘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이에 대한 연구와 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대한간학회 전산정보이사로서 간질환에 대한 인식 변화에 앞장서고 있는 조용균 교수는 자신의 간이 건강한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기를 권한다. 인식이 변화되어야 주기적인 검사를 통해 간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빠른 대처를 할 수 있다.
“간질환에 이렇다 할만한 치료제가 없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포기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에 의존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정확한 의학정보 제공과 교육이 중요한 숙제입니다.”
조용균 교수는 몸담고 있는 강북삼성병원에 대한 자부심도 숨기지 않았다.
“늘 환자의 편의를 위해 시설 공사를 하고 효율적인 진료를 위해 프로세스 개선에 분주한 모습을 봐왔습니다. 저는 늘 변화하는 우리 병원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끝으로 환자들에게 따뜻한 말을 전했다.
“그동안 환자, 보호자들과 함께하면서 배운 것이 더 많습니다. 함께하면 고통은 반으로 줄어듭니다. 오늘도 의료진이 환자분들의 건강회복을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저희가 항상 곁에 있음을 기억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