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위해 의심과 확인을 거듭하는 췌담도암 스페셜리스트 외과 신준호 교수
우리에겐 혁신의 아이콘으로 각인되어 있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수년간의 암 투병 후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으로 2011년 6월 애플의 새로운 제품군을 발표하고, 그로부터 넉 달 후 세상을 떠나 전세계의 추모를 받았던 그의 사인은 췌장암이었습니다.
또한 지난 2007년 방영되어 커다란 인기를 얻었던 의학드라마 <하얀 거탑>의 주인공 장준혁은 그토록 소원하던 명인대학병원의 외과 과장이 되지만 뜻하지 않은 병으로 유명을 달리 하게 됩니다. 탁월한 실력의 의사인 장준혁 조차도 스스로 발병 사실을 몰랐던 질병은 바로 담도암이었습니다.
췌담도암 수술의 권위자인 강북삼성병원 외과 과장 신준호 교수를 만나 두 가지 암의 치료에 대해 들어 보았습니다.
소리 없이 찾아오는 난치암: 췌장암과 담도암
췌장과 담도는 모두 우리에게는 비교적 생소한 장기입니다. ‘이자’라고도 불리는 췌장은 위와 척추 사이 후복막에 위치한 길이 12-20cm의 장기로, 소화효소와 호르몬의 분비를 담당합니다. ‘쓸개’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담낭은 간 아래에 붙은 주머니 모양의 장기로 간에서 분비된 쓸개즙을 저장하는 기관이며, 담관은 쓸개즙이 십이지장으로 배출되는 통로입니다. 담낭과 담관이 합쳐져 ‘담도계’를 이루게 됩니다.
국가암정보센터의 2012년 통계에 따르면 췌장암과 담도암은 전체 암 발병 환자 중 2.4%와 2.3%로 각기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로 높은 발병율을 기록하였습니다. 위암, 대장암 등에 비하여 발병율은 높지 않지만 뚜렷한 초기 증상이 없기에 두 가지 암은 ‘소리 없이 찾아오는 치명적 암’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유 없이 복통이 지속되고 체중이 갑자기 줄어들거나, 고령 환자의 경우 당뇨병이 발병하면 췌장암을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담도암의 증상은 황달, 복통, 체중 감소, 식욕 부진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암 모두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면 안타깝게도 상당히 진행된 상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 난치성 암인 두 가지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수술을 통해 암을 절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모든 환자들이 수술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신준호 교수가 교육자료를 통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췌장암의 경우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환자는 전체의 약 15-20%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암이 간으로 전이가 되어 있거나 중요 혈관을 침범하고 있어 수술이 어렵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다양한 사례의 췌장암과 담도암 환자들을 치료해온 신준호 교수가 이야기합니다.
“수술 가능여부는 CT나 MRI 등의 영상검사를 통해 판단하는데, 췌장암과 담도암은 수술 방법이 유사합니다. 췌장암은 휘플 수술(Whipple Procedure)이라는 수술법을 통해 췌장과 십이지장을 절제하게 되는데, 1980년대만 해도 수술 중 사망률이 40% 정도였지만, 의사들의 숙련도가 높아지며 90년대에는 5% 대로, 현재는 1%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재발율도 함께 낮아졌고요.”
치료가 어려운 암이지만 시간이 흐르며 치료 성적이 점차 향상되고 있다고 합니다. 신 교수는 수술 후 항암치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하였습니다. “항암치료 여부도 생존율에 영향을 끼칩니다. 최근에는 췌장암에 특화된 항암제가 개발되어 더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해졌습니다.”
20여 년간의 췌담도 집중, 1세대 스페셜리스트를 만들다
신준호 교수는 1997년부터 1년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에서 췌장암 수술의 독보적인 권위자인 존 L. 카메론 박사로부터 췌장암의 수술적 치료와 수술 전후 환자 관리에 대해 연수를 받은 바 있습니다.
신준호 교수 연구실 벽 한면에 자리잡고 있는 존스홉킨스의과대학 연수 인증서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외과가 지금처럼 분야별로 세분화되어 있지 않고, 환자 관리가 선진화되기 전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존스홉킨스에서 체계적인 수술 시스템과 환자 관리를 경험하며 많이 놀랐고, 그만큼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신준호 교수는 이 때의 연수 경험을 기반으로 한발 앞서 췌장암 수술에 대한 전문성을 다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췌ㆍ담도 분야가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미개척 분야였던 시절부터 신준호 교수가 일찍이 관심을 갖게 된 데엔 특별한 기억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 교수가 의과대학 본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5년, 외과학 강의를 맡은 교수가 어느 날 아침 예고 없이 결강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다급하게 강의실에 도착한 조교가 결강 사유를 전했는데, 전날 밤 교통사고로 췌장이 파열된 환자의 응급수술에 들어간 교수가 아직도 수술이 끝나지 않아 강의를 못하게 됐다는 것.
“밤을 새며 열 몇 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한다는 이야기에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을 들며 도전의식을 갖게 되었어요. 그때 외과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고, 췌장에 대한 막연한 관심을 갖게 됐지요.”
시간이 흘러 1991년, 강북삼성병원은 세계 최초로 복강경 수술을 시도한 미국의 외과의사를 초빙하여 수술 시연을 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당시 레지던트 3년 차였던 신 교수는 수술 광경을 카메라에 담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배를 째지 않고도 가능한 혁신적인 수술 기법을 생생하게 목도하며 매료되었습니다.
“그 때 수술이 담낭절제술이었습니다. 지금은 일상적인 수술이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신기하고 파격적이었죠.” 복강경 수술이 최초로 시도된 분야가 담낭절제술이었는데, 강북삼성병원은 국내에서 두 번째로 복강경 담낭절제술에 성공하였다고. “덕분에 저도 이른 시기에 자연스럽게 복강경 수술을 접하게 되었고, 이후 담도계 질환을 많이 진료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신준호 교수는 국내에서 복강경 담낭절제술을 시행한 1세대 외과의로서 지금까지 약 6,000건에 가까운 수술을 시행하며 췌담도 분야의 명실상부한 스페셜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진료 분야에 대한 신준호 교수의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은 연구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 교수는 2000년 싱가폴에서 열린 세계복강경외과학회에서 아시아 최초로 갑상선 내시경 절제술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여 최우수발표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일본에서 술기를 배우고 1999년 국내 첫 내시경 갑상선 절제술을 시행한 장본인으로서, 한 해 동안의 자신의 수술 경험을 국내외 동료 의사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의미 있는 논문으로 완성해 낸 결과였습니다. 신 교수의 성공적인 수술 사례를 계기로 이후 국내에서는 갑상선 내시경 절제술 사례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도 하였습니다.
2009년에는 신 교수가 15년에 걸쳐 복강경 담낭절제술을 한 환자 2,2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국내에서도 콜레스테롤에 의한 담낭질환 비중이 증가하고 있음을 밝혔으며, 2012년에는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국제 소화기외과학회의 초청을 받아 황달과 췌장암의 장기생존율의 상관 관계에 대한 연구 내용을 강연하기도 하였습니다.
2014년에는 임파선 전이 정도에 따른 췌장암 생존율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암 극복을 위해서는 의사에 대한 신뢰, 긍정적인 태도가 필요”
20여 년 동안 다양한 환자를 만나고, 난이도 높은 수술을 집도해온 신준호 교수에게는 기억에 남는 환자들, 수술 사례가 수 없이 많습니다. 신 교수가 그 중 잊을 수 없는 하루를 회고합니다.
“1996년쯤, 담도에서 시작한 암이 췌장 뒤를 지나는 간문맥까지 퍼져 있는 환자의 수술을 맡게 되었어요. 그때만 해도 혈관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수술 사례가 많지 않았지만, 수술을 포기하면 환자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혈관에 붙은 암을 박리하였습니다.”
간문맥은 장을 돌고 온 혈액이 간으로 들어가는 정맥으로, 지혈이 매우 까다로운 부분. 암을 떼어낸 후 꿰맨 간문맥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아 지혈을 거듭하다 보니 아침 아홉 시에 시작한 수술이 다음날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수술 마무리를 하고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기니 새벽 세 시가 되었더군요. 환자가 안정된 것을 보고서 수술을 돕던 4년차 레지던트와 화장실에 갔는데, 레지던트가 ‘선생님, 소변이 안 나와요’라고 하는 거예요. 열 여덟 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수술실에 있다 보니 나올 게 없었던 거죠. 환자는 이후 잘 회복되었고, 그 때의 레지던트와 간혹 통화할 때면 ‘요즘도 소변이 안 나오냐’며 농담을 하곤 합니다.”
또한 신준호 교수가 위암과 대장암을 수술했던 환자가 다시 췌장암이 발병하여 수술을 해야 했던 믿기지 않는 경우도 두 차례나 있었습니다.
“이전에 암 수술을 받은 경력으로 인해 수술이 특히 까다로웠고, 그 수술을 모두 제가 했던 분들이기에 더욱 애착이 컸어요. 한 분은 지금 건강하게 계시지만, 한 분은 수술 후 항암치료 중 폐렴에 걸려 돌아가셨어요. 수술이 잘 되어 이번에도 어려운 암을 이겨내시나 했는데, 뜻하지 않은 병으로 그렇게 되어 가슴이 너무 아팠던 생각이 납니다.”
이렇듯 의학드라마를 능가하는 극적인 수술을 무수히 반복해왔지만 신준호 교수는 아직도 암에 대한 환자들의 오해를 바로잡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도록 설득하는 것이 수술보다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가장 흔하게 접하는 오해는 개복 수술을 하면 암이 더 빨리 퍼진다는 것. 그 때문에 수술을 포기하는 환자들이 아직도 많다고 합니다.
“의학이 지금만큼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 면역력이 떨어진 암 환자가 수술을 통해 감염되고 좋지 않은 결과를 맞는 경우가 생기며 만들어진 오해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개복수술이 암의 진행을 가속화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더불어 신 교수는 담낭을 제거하면 평생 소화제를 먹으며 살아야 한다는 편견을 가진 환자들도 많다며, 이러한 오해와 편견으로 인해 치료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환자가 많은 사실을 안타깝게 여긴다고 합니다.
신준호 교수는 “암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그러한 오해와 편견을 버리고, 의사를 신뢰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흥미로운 예를 들어줍니다.
“시골에서 사는 환자가 도시 환자들보다 암 수술 성적이 좋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도시에 사는 환자들은 인터넷이나 타인을 통해 자신의 병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접하고 두려움과 의혹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시골에 계신 분들은 상대적으로 그러한 정보에서 차단된 상태에서 의사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경향이 큽니다. 실제로 제 환자들을 보아도 시골 환자들의 5년 이상 생존율이 도시 환자들보다 더 높습니다. 환자와 의사의 상호신뢰관계가 치료 성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강북삼성병원은 특히 환자-의사의 신뢰 관계를 만들기에 완벽한 규모라고. “병원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다 보면 아무래도 환자와 의사/교수의 관계, 의료진끼리의 분위기가 친밀하고 밀접하기가 쉽지 않죠. 우수한 의료 수준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규모가 너무 크지 않은 우리 병원은 환자에 대한 집중도가 높고 신뢰관계를 쌓기에도 용이합니다.”
소화기암센터의 다학제 진료 역시 신 교수가 꼽는 강북삼성병원의 강점입니다. 강북삼성병원 소화기암센터는 소화기외과, 내과, 혈액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병리과의 전문의가 암 환자 한 명, 한 명에 대해 각자의 전문적인 의견을 취합하여 치료 계획을 세우고, 신속하고 전문화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센터.
“특히 췌장암과 담도암은 교수 한 명이 해결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닙니다”고 말하는 신준호 교수는 다학제 진료는 의사 입장에서는 매우 합리적이고, 환자 입장에서는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진료 시스템이라고 평가합니다.
신준호 교수는 암을 이겨내기 위해 환자에게 필요한 태도로 ‘의사에 대한 신뢰’ 다음으로 긍정적인 마인드, 특히 ‘웃음’을 꼽습니다.
“웃으면 면역력이 높아지고, 항암 세포의 활동이 더 활발해집니다. 미국에는 실제로 ‘웃음 치료’라는 것이 있는데, 신경과 출신의 의사가 비교를 통해 웃음 치료를 받은 환자의 치료 성적이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월등히 좋은 것을 입증한 사례가 있습니다.” 자신이 암에 걸렸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주 웃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
그렇기에 신준호 교수는 “’웃음’은 쉽고도 어려운 처방”이라며 “병에 대한 걱정은 모두 의사에게 맡기고, 환자는 낙관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환자를 위해서는 끝없이 의심과 확인을 반복하라”
걱정은 모두 의사에게 맡기라는 말마따나 신준호 교수는 환자의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고 의심하며 염려를 그치지 않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제 성격이 대범하고, 덜렁대기도 하고 했어요. 그런데 췌담도분야를 20여 년간 하다 보니 아주 꼼꼼하고 의심 많은 성격이 되었습니다.”
췌장암과 담도암 수술은 7-8시간 걸리는 대수술인데다 위암, 대장암 등에 비해 부작용이 생길 여지가 훨씬 큽니다. 그러다 보니 신준호 교수는 환자의 상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합니다.
“지금은 경험이 많이 쌓여 정도가 덜해졌지만, 초창기에는 특히 예민해서 수술 마치고 집에 가서도 병원에 계속 전화를 해 환자 상태를 확인하곤 했어요. 레지던트한테 보고 받은 내용도 병동으로 전화를 걸어 간호사에게 거듭 확인하고 그랬죠. 레지던트는 배우는 단계에 있다 보니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실수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매사 의심하고 확인하는 게 직업병이 되고, 집사람은 농담 삼아 ‘결혼 전엔 몰랐는데 사람이 너무 소심하다’고 핀잔을 주곤 했어요.”
인터뷰 시작 전에도 전화로 환자들의 상태를 일일이 확인하던 신준호 교수가 웃으며 이야기를 잇습니다.
“하지만 환자한테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저는 어떤 비난을 들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병원 중에서도 강북삼성병원을 찾아와 자신에게 치료를 맡기는 환자가 고맙다는 신준호 교수는 “은퇴할 때까지 손에서 메스를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것이 저를 믿고 찾아오는 환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약속과 신뢰”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은퇴 후에도 가운을 벗지 않고 의료봉사를 통해 자신의 의술을 나누고 싶다고 덧붙입니다.
20년 세월을 통해 축적한 전문성에 환자를 대하는 성실함과 치밀함이 더해진 신준호 교수가 의료 봉사를 하고 있을 때쯤이면, 더 많은 췌담도암 환자들이 신 교수 덕분에 암을 극복하고 새로운 건강을 누리고 있으리라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