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질환보다 유독 많은 편견과 오해를 가진 것이 바로 정신질환이다. 그러나 마음의 병이라 인식되던 정신질환의 치료와 접근에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치료와 동시에 뇌의 문제를 짚어내 개개인에 맞는 방법으로 접근하는 오강섭 교수의 따뜻한 동행을 따라가보자.
1968년 강북삼성병원 개원과 동시에 개설된 정신건강의학과. 50년을 향해가는 정신건강의학과는 깊은 역사만큼이나 켜켜이 쌓인 치료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특히 1983년부터 시작한 사회불안장애 집단치료는 현재까지 이어져 국내 사회불안장애 치료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중독질환,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특화된 진료로 국외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정신건강의학과에 2004년 부임해 환자와 치료를 향한 한결 같은 믿음으로 정진해온 오강섭 교수를 만났다. 대화가 시작되자 따뜻한 눈빛과 중후한 음성으로 진지하게 정신질환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에서 사뭇 환자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정신질환, 문제는 뇌에 있다
사람의 기분은 왜 달라지는 걸까? 기분이 좋거나, 불안하거나, 우울한 건 왜일까? 오강섭 교수가 어릴 때 가졌던 호기심이 그를 의사의 길로 이끌었다. 해답은 ‘뇌’에 있었다.
뇌에서 사람의 기분과 생각, 행동을 주관하므로 정신질환의 열쇠도 뇌에 있다. 물론 정신질환이 전적으로 뇌의 문제만으로 발생하지는 않는다.
유전적으로 어떤 소인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살아가며 고통스런 환경이나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누군가는 이를 이겨내지만 누군가는 합쳐진 요인에 의해 병에 이른다.
정신질환 치료에도 변화가 있었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정신치료를 최선의 치료법으로 여겼다. 뚜렷한 약물이나 생물학적인 치료법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부작용이 적으면서 치료에 효과적인 새로운 약물이 개발되어 각광을 받았다. 최근에는 이러한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병용해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오강섭 교수는 여기에 더해 환자별 개별화된 치료가 제공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개개인의 특성과 질병의 유형이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대화를 통해 환자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요. 시간이 걸릴지라도 환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치료를 제공해야 합니다.”
나쁜 일의 좋은 면, 스트레스의 긍정적인 면 현대인의 정신질환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다. 오강섭 교
수는 가족관계의 해체를 원인으로 꼽았다. 독거노인의 자살률 급증 등을 예로 들며 그가 밝히는 보호요인은 자식과 종교의 유무다. 자식이나 종교를 가진 사람은 자살 생각이훨씬 적다는 것이다. 예고치 않은 각종 사고도 정신건강을해친다. 끔찍한 사고가 뇌를 변화시키고 예민하게 만들어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면 크게 놀라거나 충격을 받아 정신과적 질병을 유발하는 것이다.
불가피한 스트레스도 흔히 알려진 원인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어떤 변화든 적응하
는 일은 인간에게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이 오강섭 교수의 설명이다.
“좋은 변화도 스트레스를 동반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고민해야겠지요. 먼저 스트레스의 긍정적인 면을 봐야 합니다. 좋은 일도 스트레스가 된다고 했는데, 반대로 나쁜 일에도 좋은 면이 있어요. 그렇다면 나쁜일, 스트레스 받는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어떻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를 고민해보세요.”
그가 제시하는 또 다른 스트레스 관리법은 일반적인 생활수칙을 잘 지키는 것이다. 충분한 수면과 영양이 대표적이다. “정신질환, 스트레스 모두 뇌에 작용하는 문제죠. 그만큼 뇌에 영양이 잘 공급돼야합니다. 뇌가 전체 에너지의 1/4 정도를 쓰니 소홀할 수 없는 부분이죠.”
잘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 병
정신질환에 관한 편견에 대해 오강섭 교수에게 묻자, 꼭 전하고 싶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마치 환자의 문제로 혹은 가족에게 원인이 있어서 생긴 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안타깝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은 뇌의 문제이기 때문에어떤 충격이나 영양 부족으로도 우울증과 같은 질환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뇌의 변화로 발생하는 증상을 잘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 것이죠.”
서양에서는 자신을 이해하고, 완벽하지 않은 자신이 가진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극복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누구나 정신치료를 받는 것에 익숙하다. 오강섭 교수는 정신질환으로 삶의 질이낮아져 힘들어하기보다 두려움을 버리고 병원에 방문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고 설명한다.
곁에서 마음을 나누고 희망을 전하는 역할
누구나 불안함을 느끼거나 정신적으로 이전과 같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모두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과 마음은 1, 2, 3단계로 반응한다.
1단계는 경고가 울리는 것으로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린다. 2단계에서는 각종 증상이 나타난다. 잠이 오지 않거나, 불안하거나, 우울함이 동반된다. 여기까지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충분한 휴식과 영양을 취하면 나아진다. 그러나 증상이 몇 달 이상 지속되고 일상에 지장을 주면 3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치료가 필요하다. 이럴 때 주변의 도움이 중요하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증상을 짚어주고 진단과 치료를 권유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때문에 주변 사람도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치료를 통해 완치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뇌는 회복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만큼 정신질환은 다른 질병보다 긴 인내가 필요함을 알고 환자가 희망을 가지고 치료를 이어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환자는 항상 옳다
오강섭 교수는 환자를 대할 때 늘 ‘환자는 항상 옳다’는 마음가짐을 다진다.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다. “환자가 왜 저런 기분을 가지게 됐고, 왜 저런 행동을하고, 저런 말을 하게 됐는지 이해하려고 합니다. 치료 이전에 환자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먼저라 생각하기에 늘 환자 편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하지요.”
많은 경우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치료에 영향을 주는 만큼 환자가 지지 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오강섭 교수의 설명이다. 의사로서 환자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온전히 느껴지는 순간이다.
“정신질환을 단순히 마음의 병이라 생각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병이 그렇듯 조기에 질병을 발견해 치료하면 합병증을 막고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병원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 급선무라는 오강섭 교수는 대화 내내 “자신의 잘못으로 병에 걸린 것이 아니니 문제가 생겼다고 느끼면 주저하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라”고 강조했다.
삶에서 맞닥뜨린 비탈길에서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 그가 지켜갈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가 앞으로 많은 사람의 좋은 동반자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대인공포클리닉
강북삼성병원 대인공포클리닉은 사회불안장애(사회공포증, 대인공포증) 환자를 위한 일종의 한국형 인지행동집단치료다. 대인공포클리닉은 1982년 시작되어 현재까지 약 3,500여 명의 환자가 방문했으며 2014년 현재 80여 회에 걸쳐 약 700여 명이 집단치료를 받았다.
8주간의 체계적 치료
강북삼성병원 대인공포클리닉은 환자 방문 시 3~4회의 문진을 통해 정확한 진단과정을 거친 후 환자에 따라 약물치료, 인지행동집단치료 등의 치료법을 선택·시행한다.
특히 인지행동집단치료에서는 한국인의 특성에 맞는 각종 치료기법을 체계적으로 시행해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인지행동집단치료의 경우 현재까지 8주 치료 직후 80% 이상의 환자가 호전을 경험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인지행동집단치료는 8주로 구성되며 매주 화요일 오후 7시부터 2~3시간 이어지고 이는 3단계로 나뉜다. ▲1단계: 왜곡된 의식을 분석·이해시켜 지적 통찰을 얻게 하는 시간으로 처음 1~3주가 이에 해당
▲ 2단계: 왜곡된 의식을 체험해 지적 통찰을 확인·강화하는 단계로4~6주에 시행
▲ 3단계: 증상을 수용하는 단계로 7, 8주에 해당
함께 공유하고 나누는 집단치료
집단치료 시에는 다양한 치료인자가 동원된다. 특히 한국인의 독특한 대인공포적 심성을 유발하는 문화적 배경에 기초한 치료기법이 많이사용된다.
한국인의 배려, 권위주의적 태도 등에 대한 이해만으로도 발병과 관련한 인식에 도움이 된다. 대표적인 인지행동치료기법에는 역설지향기법(증상을 오히려 드러내려 노력), 광고기법(증상을 남들에게 직접 이야기), 확인기법(드러낸 증상을 남들이 알아차렸는지 물어서 확인), 상황노출기법(실제 어려운 상황과 유사한 상황을 집단치료 시에 만들어 부딪혀봄), 실제노출기법(실제 어려운 상황에 부딪혀봄) 등이다. 이는 체계적으로 8주에 걸쳐 고르게 적용한다.
8주 이후에는 월 1회(매월 두 번째 금요일) 정기적인 추적치료를 시행하는데, 이를 통해 치료결과를 확인하고 치료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추적치료 시에는 그동안의 치료경과와 결과를 토의하고 타 환자의 경험을 들으며 서로 충고를 하는 등 자유로운 분위기로 진행된다.
본 내용은 삼성의료원 건강매거진 Hello SMC 정신건강편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