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치료는 수술, 항암 화학 요법과 함께 3대 암 치료법 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널리 시행되고 있다는 말이지만 일반인에게는 수술이나 약물과 달리 낯설기만 합니다. 심지어 방사선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 이미지 탓에 두렵기까지 합니다. 방사선종양학과도 생경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방사선을 이용해서 암 치료를 하는 곳이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뒤늦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습니다. 공포와 미신은 무지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방사선 치료를 제대로 알아보려고 강북삼성병원 방사선종양학과 남희림 교수를 찾았습니다.
얼토당토않지만 가장 궁금한 질문부터 던졌습니다.
방사선이라고 하면 맨 먼저 원전사고나 핵폭탄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진단’을 위해 방사선 촬영을 한 경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방사선 ‘치료’라고 하니 레이저와 혼동되기도 했습니다.
“방사선 치료는 암세포를 태우거나 물리적으로 파괴해서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포 분열과 증식에 관계된 DNA나 효소 등을 공격해서 암세포를 죽이는 항암제에 가깝습니다. 암세포의 DNA를 깨서 생장 사이클을 돌지 못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죽게 만드는 것이죠. 다만 전신 치료인 항암제와 달리, 방사선을 쬔 부위에만 국소적으로 작용합니다. 말하자면 국소적으로 작용하는 항암제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죠. 하여튼 핵폭탄의 이미지와 달리 방사선 치료는 아무 느낌이 없습니다. 아프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치료를 시작한 지 2주가 지날 때까지는 정말 제대로 하고 있는지 되묻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우리 몸을 투과한 방사선은 세포의 증식과 생존에 필수적인 핵산이나 세포막 등에 화학적 변성을 일으키는데, 정상 세포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지만 암세포는 회복이 더디고 불충분합니다. 방사선을 일정 기간 동안 매일 적정한 양으로 나눠서 쬐면 암세포와 달리 정상 세포는 비실대다가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상 조직과 암 조직 모두에 영향을 미치지만, 적정한 양으로 나누어서 정확한 위치에 적용한다면 암세포만 선별 타격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셈입니다. 암세포를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국소적으로 항암제와 비슷한 작용을 한다는 설명은 처음으로 접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방사선 치료도 항암제처럼 머리카락이 빠지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많으신데 그렇지 않습니다. 항암제는 빠르게 분열, 증식하는 세포에 대해 전신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약물에 따라 항암 주사를 맞는 부위에 상관없이 머리카락 세포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반면 방사선 치료는 직접 쬔 부위만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머리에 쬐었을 때만 그것도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그 부분만 빠집니다.”
남 교수의 설명을 듣고도 아직까지는 방사선 치료와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방사선이라면 많이들 무서워하시고 부작용도 걱정하십니다. 그래서 방사선 치료를 꺼리시는 환자분들이 적지 않고, 안 좋은 결과라도 생기면 모두 방사선 치료 탓으로 돌리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려해야 점들이 있습니다.”
남 교수는 첫째로 암의 종류, 크기와 위치가 어떠했냐 그리고 방사선 치료 전후로 어떤 치료가 시행됐냐를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요즘은 아주 초기인 경우를 제외하면 수술,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중 어느 하나만으로 끝나는 경우가 드뭅니다. 병용 치료를 하기 때문에 부작용의 원인을 어느 하나만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대개는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같은 암, 같은 병기라 해도 실제로 따져보면 환자마다 모두 다릅니다. 똑같은 경우는 오히려 드뭅니다. 주변에서 들은 사례 하나를 부풀리거나 일반화해서 지레 겁을 먹거나 예단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방사선을 언제 얼마나 어느 부위에 쬈냐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치료약도 실은 독극물의 일종입니다. 언제 어떻게 얼마나 사용하느냐 하는 적절한 조절이 문제이고 관건입니다. 방사선 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무차별 폭격이 아니라 조준 정밀 폭격을 하는 것입니다. 욕심을 내서 범위를 넓히면 부작용의 가능성이 높아지겠죠. 안전과 치료 효과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합니다. 물론 아무리 정밀 폭격을 한다 해도 정상 조직과 장기가 포함되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인체 조직과 장기는 구조적, 기능적으로 붙어있고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절한 양으로 나눠서 시행하는 것으로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결국 범위와 양을 정밀하고 적절하게 조준하고 조절한다면 큰 문제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방사선 치료의 목적은 완치와 통증 완화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말기암 환자의 통증 완화를 위해서 시행하는 경우는 방사선치료의 30% 정도입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 활동할 수 있고 컨디션이 괜찮아야 방사선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말기라서 방사선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론적으로는 암 진단을 받은 환자의 50~60%에게 방사선 치료가 도움이 됩니다. 미국은 실제로 방사선 치료를 받는 비율이 30~40% 정도이고, 우리나라는 25% 가량 됩니다. 어떤 암에는 방사선 치료가 듣지 않는다고 해서 아예 고려를 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암의 크기와 위치가 문제이지 종류를 문제 삼지는 않습니다. 갑상선암도 방사성 요오드 치료라는 좋은 방법이 있어서 그렇지 방사선 치료가 쓸모가 없어서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수술로 넉넉하게 잘 절제했더라도 통상적인 검사로는 보이지 않는 잔존 암이나 미세 전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재발방지를 위해서 추가적인 방사선 치료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기라도 항문 가까이에 있는 직장암의 경우 항문을 없애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먼저 방사선 치료를 하면 항문을 살릴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방사선 치료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암 치료법입니다. 부작용의 가능성은 있지만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일 뿐이고, 수술 등 다른 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전성과 유효성이 충분히 검증됐다는 말입니다. 남 교수의 친절한 설명을 계속 듣다 보니 막연한 불안감이 어느덧 사라졌습니다.
“강북삼성병원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저 역시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입니다. 아시는 분들이 별로 없지만 사실 방사선종양학과도 외래가 있습니다. 의뢰를 받아서 지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외래 진료도 봅니다. 어떤 경우든, 진료 시간을 충분히 잡아서 환자가 이해할 때까지 설명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환자들이 자기 몸 상태와 부작용의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 다음 스스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환자가 내원해서 암 진단을 받으면 통합 클리닉이 열립니다. 각 해당 분과의 의료진들이 모여서 환자와 함께 영상 자료를 보면서 치료 방침을 설명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의료진이 치료 방침을 협의하는 협진 회의와 환자와 보호자가 설명을 듣고 선택하는 면담을 합한 개념입니다.
방사선 치료가 결정되면, 치료 자세를 결정하고 필요한 고정 장구를 제작하며 CT를 찍는 ‘모의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다음으로, 모의 치료에서 얻은 영상과 여러 진단 영상을 종합해서 ‘전산화 치료계획’ 을 세웁니다. 복잡한 계산과 작업을 통해 범위와 위치, 양과 방법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방사선종양학과에서는 물리학자가 근무합니다. 처방한 선량이 정확한 위치에 정확한 용량으로 의사의 처방대로 되는지 모형 인체에 가상치료를 통한 사전 재확인 작업을 전문 물리학자가 합니다. 만족 할 만한 계획이 나오면 치료기로 전송합니다.
그런데 ‘전산화’라는 명칭이 불러일으키는 오해와 달리, 입력만 하면 컴퓨터가 알아서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입력과 측정, 계산, 그래픽 등을 사람이 합니다. 치료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계획과 실제 시행을 맞춰보면서 계속 미세 조정을 해야 합니다. 장비와 기기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운용하는 의료진의 역량과 경험이 일차적이라 하겠습니다.
방사선 치료는 치료실 안에서 5~20분 정도 머물고 빔이 실제로 들어가는 시간은 1~2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치료 효과나 부작용은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로 물리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암세포가 죽어서 흡수, 배출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대개는 한 달 정도 지나서 암의 크기가 줄었는지 영상으로 반응을 평가합니다. 미세 전이로 인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시행한 경우에는 추적 관찰을 통해 재발 여부를 점검합니다. 그래서 부작용의 가능성과 재발의 위험성을 잘 저울질해야 합니다.
방사선 발생 장치로는 선형 가속기가 가장 많이 사용됩니다. 치료하는 방법에 따라서, 일반적인 2차원, 3차원 입체조형 방사선 치료방사선 치료와 더불어 특수 방사선 치료인 세기 조절 방사선 치료, 영상 유도 방사선 치료, 호흡 연동 방사선 치료, 정위적 방사선 치료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런 특수 방사선 치료들은 CT 영상을 토대로 3차원 입체 영상을 재구성하거나, 방사선을 쬐는 범위내에서도 세기를 다양하게 하고, 선형가속기에 부착된 CT를 통해 계획 당시의 영상과 비교해서 오차를 교정하거나, 호흡에 따른 종양의 위치를 정확하게 분석하는 등의 방법으로 치료의 정확성을 높이고 부작용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습니다. 강북삼성병원에서는 이런 특수 방사선 치료가 모두 가능합니다.
남 교수에게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을 부탁하니, 너무 무서워하지 말라고 환자들에게 다시 한 번 당부했습니다. 두려움과 거부감을 잘 알고 있으며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한 번 진료를 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루에 40건 정도의 방사선 치료를 시행하고, 각종 특수 방사선 치료를 망라한다는 자료보다는 남 교수의 진심이 더 크게 전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