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환자를 돌보는 의사와 간호사. 이들의 생활은 질병과 함께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의 질병에 대한 지식도 일반인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의견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수시로 질병을 접하는 의사, 간호사들은 질병에 대한 인식도 일반인과 다르지 않을까?
지금까지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왔던 의사, 간호사들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대답은‘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가 정답이다.
의료진(의사, 간호사)과 일반인의 질병에 대한 인식 차이를 조사하기 위해 이번 설문조사는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의 재직 의사 105명, 간호사 196명, 외래 내원 일반인 323명으로 총 6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가장 두려운 병은 역시 암.
그 결과 세 그룹 모두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으로 암을 꼽았다. 의사의 경우 그 다음 순으로 치매와 뇌졸중을 지목했고 간호사는 뇌졸중, 정신질환(우울증 등)순으로, 일반인은 뇌졸중, 치매 순으로 의사 집단과는 다소 다르게 나타났다.
이처럼 세 그룹 모두 암을 가장 두려운 질병으로 지목한 것은 아직 암을 치료하는 획기적인 방법이 없는데다 가장 고통스러운 질병이라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의사, 일반인 집단에서 낮게 나타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간호사 집단에서 높게 나타난 것은 다양한 종류의 환자들을 보살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보여 진다.
회복이 어려운 암, 그래서 더 무서워.
또한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의 이유로는 세 그룹 모두 첫째로 ‘질병이 발병했을 시 회복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으로 의사, 간호사들은 ‘고통이 심해서’, ‘가족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으며, 일반인도 의사, 간호사 집단과 순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의사도 병에 걸리면 의료진 의견에 따라 치료 받겠다.
이러한 질병 발생 시 치료방침에 대한 의사결정을 누가 할 것 인가에 대한 질문에 세 집단 모두 ‘의료진의 의견을 따르겠다’가 가장 많았으며‘본인의 의지대로 치료’‘가족 의견에 따라 치료’가 각각 그 뒤를 따랐다.
의사는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독선적이고 고집이 센 모습으로 묘사되어 자신의 질병에 대해서도 자기 스스로가 치료 방향을 결정할 것 같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특이한 점은 간호사 집단의 경우 ‘본인의 의지대로 치료하겠다’라는 의견이 36%로 타집단(의사 19%, 일반인 10%)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기타 응답 중에는 ‘신앙에 따라 치료하겠다’‘치료받지 않겠다’등 이색적인 답변도 있었다.
고령이거나, 여성일수록 가족 먼저 생각.
일반인의 경우 연령대별(20대~70대)로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도 암이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으로 뇌졸중, 치매가 뒤따랐다.
두려워하는 이유에서는 20~40대가 ‘회복가능성이 낮아서’를 가장 많이 답한 반면 50~70대에서는 ‘가족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라고 답해 고령일수록 자신보다는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일반인이 성별로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은 남자는 암, 뇌졸중, 심근경색 등 심장질환 순으로 조사되었고 여자는 암, 치매, 뇌졸중 순으로 나타났다.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의 이유로 남자는 ‘회복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를 가장 많이 선택한 반면에 여자는 ‘가족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서 대조적인 결과를 보여줬다. 이러한 차이는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생활을 많이 하는 남성들이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 폭음, 흡연 등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뇌졸중, 심근경색 등 심장질환에 민감한 것으로 분석되며, 상대적으로 여성이 모성애가 강해 가족에게 피해를 주기를 꺼려하여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동원 교수는
“의사나 일반인의 질병에 대한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 설문조사였으며, 질문 응답 중 의사 집단에서 다수의 응답자가 의료진 의견에 따라(77%) 치료를 하겠다고 응답한 것은 의료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의사들이 국내 의료서비스를 신뢰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국내 의료 서비스의 질적 우수성에 대한 전문가집단의 신뢰도가 설문조사 결과에 반영됐다고 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 남성에 비해 여성이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결과는 남성이 성과 지향적인데 반해 상대적으로 여성이 관계지향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며, 나이든 남성에서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결과가 나온 이유도 나이가 들수록 남성의 경우에도 이러한 관계 지향적 성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